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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 청소년 보행 불안정의 원인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9일
3분 분량

얼마 전 진료실에서 중학생 환아를 만났다. 부모는 아이가 유독 잘 넘어지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균형을 못 잡는다며 걱정했는데,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신경계 이상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검사를 진행해야 했던 사례였다. 이런 청소년 보행 불안정의 감별 진단 중 하나가 바로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이다.

자꾸 넘어지는 아이, 단순한 성장통이 아닐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자꾸 넘어지고 걸음이 어색해지면 처음엔 운동 부족이나 사춘기 성장통 정도로 넘기기 쉽다. 하지만 10세 전후로 시작된 보행 불안정이 몇 달, 몇 년에 걸쳐 서서히 나빠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은 이런 전형적인 경과를 보이는 유전성 희귀 질환으로, 발병 후 5년 이내에 실질적인 보행 장애가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원인 불명의 청소년 보행 이상을 진료할 때 반드시 감별 목록에 올려야 하는 질환이다.

왜 걸음이 흐트러지는가, 유전자와 미토콘드리아 이야기

이 질환의 원인은 FXN이라는 유전자의 인트론 부위에 있는 GAA 삼염기 반복서열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는 데 있다. 이 변화 때문에 프라탁신이라는 단백질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는데, 프라탁신은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가 제대로 일하도록 돕는 중요한 단백질이다. 프라탁신이 부족해지면 말초 신경의 축삭이 손상되고, 척수와 신경뿌리에서 신경 조직이 서서히 소실되는 이른바 '뒤로 죽어가는' 변화가 진행된다. 이 과정이 누적되면서 균형 감각과 협응 능력이 떨어지고, 결국 걸음걸이 이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치료 없이 자연 경과를 관찰한 연구에서는 매년 일정 수준의 운동실조 척도 점수가 악화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증상이 시작된 지 15~20년 후에는 휠체어가 필요해지는 경우가 흔하다.

기존 치료의 한계, 대증요법에 머물렀던 시간

안타깝게도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은 오랫동안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질환으로 여겨져 왔다. 임상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증상을 관리하는 것에 머물렀다.

  • 정형외과적으로 맞춘 신발과 보행 보조 기구로 넘어짐 예방

  • 기능적 전기 자극이나 경피 신경 자극으로 근기능 보조

  • 스탠딩 프레임 등을 이용한 척추측만증·경직 관리

  • 코엔자임 Q10, 비타민 E, 이데베논 등 항산화제 시도

이런 접근들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질병 자체의 진행 속도를 늦추지는 못했다. 항산화제 계열의 약물도 초기 유럽 연구에서 제한적인 효과만 확인되어 표준 치료로 자리 잡지 못한 채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진행을 늦추는 첫 치료제, 오마베록솔론의 등장

이런 상황에 변화가 생긴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오마베록솔론(제품명 스카이클라리스)을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의 첫 치료제로 승인했다. 하루 한 번 150mg을 공복에 경구 복용하는 방식이다.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관련 임상시험 결과를 근거로 16세 이상 환자에서 사용을 승인했다.

임상 메모. 16~40세 환자 103명을 대상으로 한 이중맹검 위약대조 임상시험(MOXIe Part 2)에서, 오마베록솔론 투여군은 48주 치료 후 위약군 대비 평균 2.4점의 통계적으로 유의한 운동실조 척도(mFARS) 개선을 보였다. 이후 약 4년간 이어진 공개연장 연구에서도 자연 경과와 비교해 질병 진행이 느려지는 경향이 관찰됐다.

다만 이 결과를 '증상이 좋아졌다'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정확히는 '진행 속도가 완만해졌다'는 것이며, 완치나 원상 회복을 의미하는 결과는 아니다. 전문가 진료지침에서도 다른 승인된 치료제가 없고 부작용 발생률이 낮게 보고된 점을 근거로 16세 이상 환자에게 이 약물 사용을 권고하고 있지만, 간 기능 효소와 콜레스테롤 수치 상승 가능성이 있어 정기적인 혈액 검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걸음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 심장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을 진료할 때 신경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순환기내과 협진이다. 이 질환을 가진 환자의 절반 이상에서 심근병증이 동반되고, 실제 사망 원인의 상당수가 부정맥이나 심부전이기 때문이다. 보행 불안정만 눈에 보인다고 해서 신경계 문제로만 접근하면 정작 생명과 직결된 심장 합병증을 놓칠 수 있다. 정기적인 심장 초음파와 심전도 추적이 신경학적 치료와 나란히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아·청소년에게는 아직 신중해야 하는 이유

오마베록솔론은 현재 16세 이상 환자를 대상으로 승인된 약물이다. 정작 이 질환이 가장 흔하게 시작되는 10대 초반 소아·청소년에 대한 안전성과 효과는 아직 별도의 임상시험을 거치는 중이다. 직립 안정성 점수 변화를 지표로 하는 3상 소아 임상시험이 국제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소아 적응증 확대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 부모나 보호자가 성급하게 성인 대상 결과를 소아에게 그대로 적용해 기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조기에 의심하고, 함께 관리하는 것이 답이다

결국 프리드리히 운동실조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청소년기 원인 모를 보행 이상을 놓치지 않고 조기에 유전자 검사를 고려하는 것이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심장 합병증 관리 시기도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치라는 결과를 약속할 수는 없지만, 진행을 늦추는 치료 옵션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환자와 가족에게는 의미 있는 변화다.

희귀 신경계 질환을 앓는 청소년과 가족을 진료실에서 만날 때마다, 나는 병원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이미 관리가 시작된다고 말한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신경과와 재활, 보호자 상담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통합 관리 체계를 통해 이런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이 낯선 진단 앞에서도 혼자 헤매지 않도록 곁을 지키고 있다. 걸음이 흔들려도 그 곁을 지키는 손이 있다면, 그 다음 걸음은 조금 더 단단해질 수 있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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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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