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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발 통증인데 신경과? 파브리병을 의심해야 하는 이유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10월 8일
3분 분량

얼마 전 진료실에서 "어릴 때부터 손발이 타는 것처럼 아팠는데 아무도 원인을 몰랐다"는 환자를 만났다. 정형외과, 피부과를 거쳐 신경과까지 오기까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런 사례를 접할 때마다 파브리병이라는 희귀질환이 얼마나 쉽게 놓치는 병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손발 통증, 단순한 성장통이 아닐 수 있다

파브리병은 X염색체에 있는 GLA 유전자의 변이로 알파-갈락토시다제 A라는 효소가 부족해지면서 생기는 유전질환이다. 이 효소가 모자라면 분해되지 못한 당지질이 몸 곳곳의 세포에 쌓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장, 심장, 신경계를 서서히 망가뜨린다. 희귀질환 포털 오파넷(orpha.net)에 따르면 유병률은 1만 5천명 중 1명 수준으로 보고되는 드문 질환이다.

문제는 이 병의 첫 신호가 거창한 장기 손상이 아니라 아동기나 청소년기의 손발 끝 통증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타는 듯하거나 찌릿찌릿한 느낌이 반복되고, 땀이 잘 안 나는 무한증이나 저한증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병이 진행되면 단백뇨와 신장 기능 저하를 거쳐 신부전으로, 또는 심비대·부정맥·심부전·뇌졸중 같은 심뇌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왜 신경과까지 가야 하는가 - 기존 접근의 한계

진료 현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이 통증이 흔히 성장통으로 치부된다는 사실이다. 환자가 워낙 드물고 증상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다 보니, 유년기부터 증상이 있었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다가 성인이 되어 장기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진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까다로운 점은 일반적인 신경전도검사로는 이 통증의 원인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파브리병에서 손상되는 신경은 가늘고 작은 소신경섬유인데, 이런 신경은 일상적인 전도검사로 평가되지 않는다. 실제 임상 연구에서도 운동·감각 신경전도 속도는 대개 정상으로 나오지만, 냉각 자극에 대한 역치가 상승해 있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소신경섬유병증을 시사하는 단서가 된다.

  • 손발 끝 작열통·저림이 반복된다

  • 땀이 잘 나지 않는 무한증 또는 저한증이 동반된다

  •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설사 등 위장관 증상이 있다

  • 피부에 작은 붉은 반점(혈관각화종)이 보인다

이런 증상이 겹친다면 정형외과나 피부과보다 먼저 신경과에서 전문적인 감별 평가를 받아보는 것이 순서에 맞는다. 국내 보도에 따르면 파브리병은 확진까지 평균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특정 사례에 근거한 수치이므로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진단이 늦어지기 쉬운 질환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접근 - 조기 발견과 치료 옵션의 변화

국제 전문가 패널 보고서는 파브리병의 첫 신경학적 증상이 말초 및 자율신경계의 소신경섬유 손상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젊은 환자의 신경병성 통증은 만성적인 작열통과 급성 극심통 발작, 온도감각 이상, 특히 냉각 감지 저하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과거에는 이런 증상을 '말단이상감각증'이라 불렀지만, 최근에는 이 용어가 저림만을 의미해 실제 통증 양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5년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말초신경병증은 파브리병 환자의 약 80%에서 나타나는 가장 흔한 임상 양상이다. 그만큼 손발 통증은 이 병을 가장 먼저 알아챌 수 있는 창구인 셈이다. 소신경섬유 침범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적시에 치료를 시작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라는 점도 여러 문헌에서 반복해 강조되고 있다.

임상 메모. 혈액 투석 환자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원인 불명의 뇌졸중을 겪은 환자군에서는 파브리병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보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접근이다.

구체적인 진단과 치료의 흐름

신경과에서는 정량적 감각검사나 피부생검을 통한 신경섬유밀도 평가 등 소신경섬유 손상을 잡아낼 수 있는 특화된 검사를 고려할 수 있다. 여기에 혈중 효소활성 검사와 유전자검사를 더해야 확진에 이를 수 있는데, 특히 여성 환자의 경우 혈액 효소활성 검사만으로는 정상으로 나올 수 있어 유전자검사가 함께 필요한 경우가 많다.

치료는 부족한 효소를 보충해 세포 안에 쌓인 물질을 줄여주는 효소대체요법이 기본 원리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페구니갈시다제알파 성분의 효소대체요법제가 허가되는 등 치료 옵션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미 진행된 신장이나 심장 손상을 완전히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증상이 가벼운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장기적인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환자가 확진되면 가족 구성원에 대한 스크리닝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유전질환의 특성상 형제자매나 자녀가 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확진 후에는 산정특례 제도를 통해 등록일로부터 5년간 법정본인부담률의 10%만 적용받을 수 있어, 장기적인 치료 부담을 상당 부분 덜 수 있다.

임상적 의미와 주의할 점

물론 손발 통증이 곧 파브리병을 뜻하지는 않는다. 작열통이나 저림은 당뇨병성 신경병증을 비롯한 흔한 질환에서도 나타나는 비특이적 증상이며, 파브리병 자체가 매우 드문 병이기 때문이다. 효소대체요법도 질환의 진행을 늦추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일 뿐, 모든 손상을 되돌려 놓는 치료는 아니다.

또한 여러 전문과가 함께 모여 논의하는 다학제 진료가 파브리병에는 가장 이상적인 접근이지만,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비용과 접근성 측면에서 현실적인 제약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기에 의심하고, 신경과를 비롯한 관련 전문과의 평가를 받는 것만으로도 진단 시기를 크게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원인 모를 손발 통증을 오래 끌고 온 환자, 그리고 그 가족을 진료실에서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조금만 더 일찍 의심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이런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이 진단 이후의 긴 여정을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신장과 심장, 신경계 상태를 함께 살피며 꾸준히 곁을 지키는 진료를 이어가고자 한다. 손발 통증 하나에서 시작된 의심이 적절한 치료와 관리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희망적인 출발이라고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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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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