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사전연명의료의향서, CJD 환자도 작성해야 하나요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16일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10일

얼마 전 진료실에서 한 보호자가 물었다. 아버지가 CJD 진단을 받았는데 아직 말도 잘하고 걸어 다니시는데 굳이 지금 연명의료 관련 서류를 써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CJD라는 병의 진행 속도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나온다.

왜 이 시기에 이 질문을 받는가

CJD, 즉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뇌에 영향을 미쳐 급격한 인지 기능 저하와 신체 기능 저하를 초래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초기에는 집중력 저하, 시각장애, 수면장애, 보행 불안정 등이 나타나고 이후 치매와 근경련이 동반된다. 국내 자료는 증상 발현 후 평균 14개월에 사망한다고 설명하고, 해외 자료는 알츠하이머병보다 훨씬 빠르게 악화되어 6~12개월 이내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다. 다만 이 수치는 출처마다 다르게 표현되므로 특정 환자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값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이다. CJD는 다른 치매성 질환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중기 이후에는 운동기능과 언어기능을 잃는 경우가 많다. 진단 초기에 멀쩡해 보이던 환자가 몇 달 사이 의사표현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일이 드물지 않다는 뜻이다.

기존 접근의 한계 - 말기 진단을 기다리면 늦는다

현재로서는 CJD의 진행 속도 자체를 늦출 치료법이 없다. 항발작제나 항불안제로 근육 경련을 줄이고, 필요시 진정제나 항정신성 약물로 불안 증상을 완화하는 정도가 가능한 접근이다. 그래서 환자와 가족을 위한 일반적 지지 요법, 호스피스, 요양 돌봄이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연명의료계획서는 담당의사가 환자를 말기 또는 임종과정으로 진단한 뒤에야 작성할 수 있는 문서다. 그런데 그 시점이면 환자는 이미 인지 저하가 상당히 진행되어 본인 의사를 명확히 밝히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실제로 국내 보도에서도 환자가 이미 의사결정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가족이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 대신 작성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진행이 유난히 빠른 CJD에서는 이 간극이 더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다른 선택지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문서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다. 연명의료계획서와 달리 이 문서는 19세 이상이면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누구나 미리 작성해 둘 수 있다. 두 문서는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성격이 다르다.

  • 연명의료계획서: 말기·임종과정 진단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담당의사가 작성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19세 이상 성인이 건강 상태와 무관하게 본인이 직접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반드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을 방문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뒤 본인이 직접 작성해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는다. 등록기관은 신분증을 요구할 수 있고, 작성 전 알아야 할 사항에 대한 설명이 제공되지 않거나 작성자 확인 절차가 누락되면 그 문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 그래서 진단 직후, 아직 본인이 등록기관을 방문해 설명을 듣고 서명할 수 있는 시기가 사실상 이 문서를 남길 수 있는 마지막에 가까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문서를 남기지 못했을 때 가족이 겪는 절차

본인이 의향서를 남기지 못한 채 의사표현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면, 가족은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환자의 뜻을 대신 확인할 수 있다.

  • 가족 2인 이상이 환자의 의사를 동일하게 진술하면, 담당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확인을 거쳐 환자의 의사로 인정될 수 있다(가족이 1인뿐이면 1인 진술도 가능)

  • 이 진술마저 어려우면 환자가족 전원의 합의로 결정할 수 있다

  • 가족 간 진술이 서로 배치되거나, 환자가 직접 남긴 문서·녹음물 등 객관적 증거가 있으면 그 증거가 우선한다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배우자,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까지 범위가 넓어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 허대석 교수도 제도 초기부터 가족 2인 이상의 일치된 진술이나 가족 전원 합의가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결국 본인이 미리 문서를 남기지 않으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남은 가족의 몫으로 돌아간다.

임상 메모. CJD 진단 초기, 아직 대화와 의사표현이 가능한 시기에 가족과 함께 등록기관을 방문해보라고 안내하는 경우가 있다. 서류 하나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 훗날 남은 가족의 부담을 크게 줄여준다는 점을 실제 현장에서 자주 체감한다.

임상적 의미 - 선택의 문제이지 의무가 아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하겠다는 의향서일 뿐, 치료 자체를 거부하거나 안락사를 의미하는 문서가 아니다.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기로 하더라도 통증을 줄이기 위한 처치나 영양분·물 공급 등은 별개로 계속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 문서를 반드시 써야 한다고 단정할 이유는 없다. 어디까지나 본인이 자신의 삶의 마지막 단계를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장치일 뿐이다.

다만 CJD처럼 병의 진행이 빠르고 예측이 어려운 질환에서는, 이 결정을 미룰수록 정작 본인의 뜻을 문서로 남길 기회 자체가 사라질 위험이 크다는 점은 분명히 짚어둘 필요가 있다. 2026년 11월 시행 예정인 연명의료결정법 개정 사항도 있는 만큼, 향후 구체적인 절차 변화가 있을 수 있어 담당 의료진이나 등록기관을 통해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로뎀요양병원이 함께하는 이유

로뎀요양병원에서는 CJD를 비롯한 프리온병 환자와 가족을 만날 때, 의학적 치료 계획뿐 아니라 이런 제도적 준비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 병이 빠르게 진행되는 만큼 가족이 뒤늦게 혼란스러운 절차를 밟게 하기보다, 아직 환자 본인의 의사가 분명한 시기에 차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두려운 질환이지만, 가족이 함께 미리 준비해 나간다면 남은 시간을 조금 더 평온하게 채워갈 수 있다. 로뎀요양병원은 그 준비의 과정을 곁에서 함께하고자 한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CJD 관련해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같은 제도를 다룬 글

입원 가능 여부와 제도 관련 문의는 로뎀요양병원의 입원 대상 안내와 사회복지 안내 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