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부모님 재산, 성년후견제도로 지키는 법
-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 8월 24일
- 3분 분량
최근 진료실에서 만난 보호자 한 분은 어머니 명의의 정기예금을 해지하려다 은행 창구에서 거절당했다고 했다. 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어 본인 의사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더 이상 재산을 대신 관리할 수 없는 시대다.
치매가 진행되면 재산관리 능력부터 흔들린다
치매는 기억력만 무너뜨리는 병이 아니다. 진행될수록 예금 인출, 부동산 매매, 계약 체결 같은 법률행위를 스스로 안전하게 처리하는 판단력까지 서서히 잠식한다. 국내 65세 이상 인구 중 치매로 추정되는 환자는 약 87만~97만 명 수준으로 보고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수치보다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돌봄 가족의 현실이다.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치매 환자 가족의 절반 가까이가 돌봄 부담을 호소하고 있고, 환자 1인당 연간 소요 비용도 지역사회 거주 시 1700만 원대, 시설·병원 이용 시 3100만 원대에 이른다는 조사가 있다. 병원비, 요양비를 감당하려면 결국 환자 본인 명의의 재산을 움직여야 하는 순간이 오는데, 이때 법적 권한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족이 알아서 관리하던 시절의 한계
과거에는 자녀나 배우자가 본인 동의 없이 부모님 통장과 부동산을 사실상 대신 관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병이 깊어질수록 은행이나 등기소가 거래를 거부한다는 점이다. 법적 근거 없이 대리 거래를 시도하면 창구에서 막히고, 형제자매 사이에서는 "누가 그 돈을 관리했느냐"를 두고 갈등이 불거지곤 한다.
성년후견제도는 이런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도입됐다. 과거의 금치산·한정치산 제도와 달리 당사자의 남아 있는 판단능력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경제적 영역뿐 아니라 의료 결정 같은 비경제적 영역까지 지원할 수 있고, 후견인에 대한 실질적인 법원 감독이 예정돼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다만 제도가 있어도 절차가 낯설고 복잡하다 보니, 실제로는 필요한 시점에 활용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가족이 여전히 많다.
우리 가족 상황에 맞는 후견 유형 고르기
성년후견제도는 후견인 선임 방법과 권한 범위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뉜다.
성년후견 – 예금 관리, 병원비 지출, 부동산 처분, 계약 체결 등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로, 보호 범위가 가장 넓다.
한정후견 – 전면적 보호까지는 필요 없지만 큰 금액의 재산 처분이나 금융거래, 계약 체결에 도움이 필요한 경우.
특정후견 – 특정 계약, 특정 재산 처분, 의료 결정 등 제한된 업무에 대해서만 일시적으로 지원이 필요한 경우.
임의후견 – 아직 판단능력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나중에 능력이 부족해질 상황을 미리 대비해 본인이 직접 후견계약을 맺어두는 방식.
진단 초기, 본인이 아직 의사표현이 가능한 단계라면 임의후견계약을 미리 체결해 두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이후 병이 진행되면 가정법원에 임의후견감독인 선임만 청구하면 계약 내용대로 후견인이 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 반면 이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라면 성년후견이나 한정후견을 법원에 새로 청구해야 하는데, 요양원 비용 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전형적인 신청 사유가 된다.
청구 절차와 비용, 그리고 남용을 막는 장치
성년후견·한정후견 개시 심판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가정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원칙적으로 의사의 정신감정을 받도록 하고, 본인을 직접 심문해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심판이 확정되면 후견등기부에 등기되며, 이 등기사항증명서가 이후 은행이나 부동산 거래에서 후견인의 대리권을 증명하는 서류가 된다.
비용은 인지대, 송달료 같은 일반적인 가사비송 비용과 감정 비용이 들며, 형편이 어려운 경우 법원이 절차구조를 통해 비용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 후견인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법원이 피후견인의 재산 규모와 후견인의 업무량을 참작해 결정하므로, 구체적인 액수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후견인이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은 이 제도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가정법원과 성년후견감독인이 재산상황을 조사하고 필요한 처분을 명할 수 있고, 후견인과 피후견인 사이에 이해가 상반되는 거래를 할 때는 특별대리인 선임을 청구해야 한다. 부동산 매매, 대출, 고액 자산 처분은 반드시 법원의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며, 파산 이력이 있거나 피후견인을 상대로 소송 중인 사람 등은 애초에 후견인이 될 수 없다.
임상 메모. 후견인이 선임되면 은행·등기소에서 "법적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거래가 거부되던 문제는 해소되지만, 이는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이 아니다. 고액 거래는 법원 허가가 필수이며, 이 절차가 오히려 즉흥적인 재산 처분을 막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후견인 부담을 나누는 공적 신탁,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
최근에는 후견인 개인이 재산관리 전체를 짊어지는 부담을 덜어줄 보완 장치도 마련됐다. 국민연금공단이 관리하는 공공신탁 형태의 치매안심재산관리서비스가 그것으로, 치매 환자나 경도인지장애 환자의 현금성 자산을 국민연금공단이 맡아 관리하면서, 미리 세워진 재정 지원 계획에 따라 생활비와 요양비 등을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환자 본인이 판단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직접 신청할 수도 있지만,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경우에는 법적 후견인을 통해 신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결국 후견제도와 맞물려 작동하는 구조다. 다만 이 서비스는 시범 시행 초기 단계이므로, 신청 자격과 절차, 지역별 시행 여부는 국민연금공단이나 지방자치단체 공지를 통해 최신 정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진료 현장에서 드리고 싶은 말
성년후견제도는 재산을 완벽하게 지켜주는 만능 장치는 아니다. 법원의 지속적인 감독을 전제로 한 제도이며, 후견인의 권한 남용이나 가족 간 분쟁 같은 예상치 못한 위험이 여전히 따를 수 있다. 또한 성년후견은 전면적 보호이기 때문에 본인의 남아 있는 판단능력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어, 상태에 따라 한정후견이나 특정후견처럼 더 제한적인 유형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자녀나 배우자가 단독으로 판단하기보다, 의료진의 진단과 법률 전문가의 상담을 함께 거치는 것이 안전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는 가족일수록 나중에 겪는 혼란이 훨씬 줄어든다는 점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도 입원 상담 과정에서 가족들이 재산관리 문제로 막막해하는 모습을 자주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의료진과 사회복지 상담을 통해 후견제도와 공적 지원 서비스를 안내하며, 환자의 남은 삶과 가족의 일상이 함께 지켜질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제도를 미리 알아두는 것만으로도 막막했던 앞날이 한결 정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도 진료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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