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치매 진단 전에 써둬야 하는 이유
-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 3일 전
- 3분 분량
지난달 진료실에서 한 보호자가 물었다. "어머니가 아직 초기 치매인데, 나중에 심해지면 연명의료 관련 서류도 못 쓰게 되나요." 답은 명확하다. 의사결정능력이 남아있는 지금이 바로 그 문서를 써야 할 시점이다.
치매는 왜 '지금'이 중요한가
치매는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비가역적 질환이다. 오늘 대화가 잘 통하고 판단이 또렷해 보여도, 그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진행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의사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단계로 넘어간다.
중요한 건 치매 환자가 처음부터 판단력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완전한 의사결정능력을 가지고 스스로 삶을 결정해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서서히 그 능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겪는다. 그래서 능력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무엇을, 언제 정리해둘지가 진료 현장에서 늘 중요한 화두가 된다.
기존 접근의 한계, 능력을 잃은 뒤엔 늦다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된 이후에는 연명의료 관련 결정만 막히는 게 아니다. 온전한 판단능력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부동산을 팔 수도, 예금을 인출할 수도 없다. 위임장을 통한 거래나 유언도 적법하게 하기 어려워진다. 연명의료 의사결정은 재산·법률 문제와 마찬가지로, 능력이 있을 때 처리해야 하는 시급한 사안인 셈이다.
성년후견 제도가 있으니 나중에 가족이 대신 결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보호자도 많다. 하지만 후견이 개시되면 오히려 환자 본인의 의사가 결정 과정에서 소외될 위험이 생긴다. 그러다 보니 정작 환자 스스로 지원체계 이용을 꺼리게 되는 문제도 지적된다. 본인의 뜻을 문서로 남겨두는 것과, 후견인이 대신 판단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다.
임상 메모. 치매 진단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의사결정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법원 역시 유언능력이 다투어진 사건에서, 의학적으로 치매나 심신상실 등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진단할 수 있더라도 그 사정만으로 유언공정증서 작성 당시 의사능력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실제로 중등도 치매와 판단력 저하 진단을 받았어도, 유언의 의미나 결과를 판단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 사례도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무엇을 어떻게 남기는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작성할 수 있는 문서로, 자신이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하기로 하는 결정, 그리고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남기는 것이다. 지금 당장 아프지 않아도, 미래를 대비해 미리 써둘 수 있는 문서라는 점이 핵심이다.
작성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 충분한 설명을 듣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등록기관은 2024년 12월 760곳에서 2025년 12월 819곳으로 늘었고, 연명의료 결정 제도를 시행하는 의료기관도 같은 기간 468곳에서 513곳으로 확대됐다. 접근성이 점차 나아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변화의 흐름도 감지된다. 보건복지부와 국가호스피스연명의료위원회는 앞으로 온라인으로도 의향서를 작성하고 등록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법령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등록기관에 직접 방문해야만 작성할 수 있어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요양시설 거주자에게는 문턱이 있었는데, 이 부분이 완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는 아직 절차 마련과 법령 정비를 추진하는 단계이므로, 실제 시행 시점과 세부 요건은 계속 확인이 필요하다. 2025년 6월부터는 작성된 의향서를 모바일로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등록증 발급도 시작됐다.
대상: 19세 이상 누구나
방법: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 방문, 충분한 설명 후 본인이 직접 작성
변경·철회: 작성 후에도 언제든 의사를 바꾸거나 철회 가능
확인: 모바일 등록증으로 간편 조회 가능
제도의 확산, 숫자로 보는 관심
도입 첫해인 2018년 10만 건에 못 미쳤던 등록 건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어 2022년 말 157만 건을 넘었고, 2025년 8월 기준 300만 명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사전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 가족 진술 등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 등이 이행된 건수도 2023년 8월 말까지 30만 건을 넘어섰다. 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한 가지 오해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치료를 포기하겠다는 문서가 아니다. 임종과정에 있을 때 무의미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특정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일 뿐, 호스피스나 일상적인 치료 전반을 거부하는 것과는 다르다.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며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약속에 가깝다.
임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나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단순하다. 진단 초기, 특히 경도 인지장애나 경도 치매 단계에서 이 문서를 미리 써두도록 권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가장 안전하다. 언제까지 유효한 판단이 가능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판단력이 남아있는 지금을 놓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등록기관에서 상담할 때 작성 당시의 의사능력을 함께 기록해두면, 훗날 가족 간에 의견이 갈리거나 문서의 효력을 두고 다툼이 생길 여지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또한 성년후견이 개시되기 전, 즉 본인의 의사능력이 온전히 인정되는 시기에 이런 문서를 남겨두면 후견 개시 이후 환자 본인이 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하는 것이 곧 존엄을 지키는 길
치매를 진단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정작 본인의 뜻을 남길 기회를 미루다 놓쳐버리는 경우를 진료 현장에서 여러 번 지켜봤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삶을 포기하는 서류가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어느 순간에도 자신의 뜻대로 존엄하게 대우받기 위한 준비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치매 초기 환자와 가족이 이런 결정을 미루지 않도록, 진단 초기부터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안내하고 상담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두고 있다. 판단력이 남아있는 지금, 가족과 함께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문서로 정리해두는 것만으로도 이후의 시간을 훨씬 덜 불안하게 맞이할 수 있다. 그 준비가 결국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작은 안심이 되어줄 것이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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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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