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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질환 환아의 형제자매, 소외감은 어떻게 다독일까

  •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 6일 전
  • 3분 분량

진료실에서 환아를 돌보다 보면, 정작 손을 놓고 있던 아이는 그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형이나 언니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뇌신경계 희귀질환은 치료도 돌봄도 오래 걸리는 병이라, 가족의 시선이 환아 한 명에게 쏠리기 쉽다. 그 사이 형제자매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를 스스로 좁혀 나간다.

진료실 밖에서 조용해지는 아이들

뇌신경계 희귀질환은 진단부터 치료, 재활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부모는 병원 예약과 검사 결과, 재활 스케줄을 챙기느라 하루가 짧고, 남은 에너지는 대부분 환아에게 향한다. 이런 생활이 몇 달을 넘어 몇 년으로 이어지면, 집안의 관심과 대화는 자연스레 환아 중심으로 굳어진다.

문제는 그 옆에 있는 형제자매다. 아이는 부모의 사랑이 줄었다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요구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감각을 먼저 익힌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사소한 서운함, 친구와의 갈등 같은 것들을 꺼내려다가도 '엄마 아빠가 더 힘든데'라는 생각에 입을 다문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느끼게 된다.

기존 접근의 한계, 왜 놓치기 쉬울까

형제자매의 어려움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다. 오히려 이런 아이들은 부모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스스로 욕구를 줄이고, 필요한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법을 빨리 익힌다. 언뜻 보면 '알아서 잘 크는 아이', '속 안 썩이는 아이'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문제없어 보이는 모습이 실제로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를 가리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을 안정된 상태로 오해하면, 정작 필요한 시점에 아무런 지원도 제공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소외감은 아동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죄책감이나 우울, 관계에 대한 회피불안 같은 형태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어, 어릴 때부터 챙기는 것이 중요하다.

임상 메모. 진료실에서 부모에게 환아의 상태만 묻고 끝내면, 형제자매의 변화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은 채 지나간다. '다른 아이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요'라는 짧은 질문 하나가 가족 전체를 살피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형제자매를 위한 지지, 어떤 방법이 있을까

국내에서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마련된 지원 방식들이 있다. 지자체 장애인복지관과 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는 장애나 희귀질환이 있는 형제자매를 둔 아이들을 대상으로 또래 모임 형태의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례가 확인된다.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자신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마음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질 수 있다.

국내 연구에서도 형제자매 대상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이 부담감, 학교·친구 관계, 분노 조절, 미래에 대한 걱정 등 여러 영역에서 이전보다 나아진 대처 양상을 보였다는 결과가 보고된 바 있다. 물론 이 결과는 특정 프로그램에 참여한 소규모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 모든 아이에게 같은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혼자 알아서 견뎌야 한다'는 생각을 바꿔줄 실마리는 될 수 있다.

  • 거주 지역 장애인가족지원센터·복지관에 형제자매 대상 프로그램 문의하기

  • 환아 진료·재활 일정과 별개로, 형제자매만을 위한 시간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기

  • 형제자매가 감정을 표현했을 때 '네 마음도 중요하다'는 반응을 분명히 보여주기

  • 겉으로 문제없어 보이는 아이일수록 먼저 안부를 물어보기

가족 전체를 보는 시선이 필요한 이유

부모가 비장애 형제자매의 걱정과 스트레스를 이해하고, 그 욕구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지원의 시작이라는 전문가 의견이 있다. 여기에 더해 가족치료나 가족탄력성 향상 프로그램, 가족 간 만남을 지원하는 여가 활동처럼 가족 구성원 모두를 아우르는 접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다만 모든 형제자매가 똑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아이마다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며, 나이가 많은 형제자매가 어린 형제자매보다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아이의 나이와 성향에 맞춘 세심한 관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임상적 의미와 로뎀요양병원의 시선

희귀질환 환아를 돌보는 가족을 만날 때, 나는 환아 상태만큼이나 형제자매의 표정을 함께 살피려 한다. 조용하고 착한 아이일수록 자신의 마음을 뒤로 미뤄두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개입이 아니라, '너도 중요한 사람'이라는 짧고 분명한 확인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도 환자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 전체의 상태를 함께 들여다보려 한다. 부모가 지쳐 있으면 형제자매를 챙길 여력이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가족이 각자의 자리에서 숨 돌릴 틈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 생각한다. 환아도, 그 곁의 형제자매도 함께 자라날 수 있는 가족이 되기를, 그리고 그 여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기를 바란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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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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