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수소뇌변성증 보행 재활,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 8월 19일
- 4분 분량
척수소뇌변성증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운동을 하면 정말 좋아지나요, 아니면 그냥 버티는 건가요.' 최근 발표된 임상시험 결과를 보면 이 질문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게 됐다. 운동의 종류와 지속성에 따라 보행 기능이 실제로 달라질 수 있다는 근거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진행성 질환, 그러나 손 놓고 있을 병은 아니다
척수소뇌변성증은 소뇌에 서서히 퇴행성 변화가 오면서 걸음걸이, 손동작, 말투, 눈 움직임까지 조금씩 무너지는 유전성 질환이다. 대개 성인기에 발병하지만 드물게는 아동기에도 나타나며, 유전 방식도 상염색체 우성과 열성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오는 증상은 대부분 보행 장애다. 발이 자꾸 꼬이고, 똑바로 걷는데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린다는 하소연을 진료실에서 자주 듣는다.
문제는 이 질환이 아직 근본 치료제가 없는 진행성 질환이라는 점이다. 병의 종류와 원인에 따라 진행 속도는 다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빠지는 경향은 공통적이다. 그렇다고 환자와 가족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지점에서 재활의 역할이 커진다.
균형훈련만으로는 부족했던 이유
지금까지 임상 진료지침은 소뇌성 운동실조 환자에게 균형 훈련을 표준으로 권고해왔다. 실제로 균형 훈련은 운동 강도가 충분히 도전적일 때 운동실조 중증도를 나타내는 SARA 점수를 1.0~2.8점가량 개선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변화로 인정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균형 훈련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가상현실이나 바이오피드백, 체중지지 트레드밀 같은 보조 기법들은 근거가 아직 약한 편이고, 고강도 유산소 운동처럼 심폐지구력을 함께 끌어올리는 접근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알려진 바가 적었다. 무엇보다 재활 효과가 있어도 환자가 훈련을 멈추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점이 반복 확인되면서, '한 번 받고 끝나는 재활 프로그램'의 한계가 뚜렷해졌다.
최근 연구가 보여준 새로운 방향
2025년 11월 JAMA Neurology에 발표된 미국 컬럼비아대 주도 임상시험은 이런 흐름에 의미 있는 자료를 더했다. 평균 SARA 점수 12.1점의 성인 62명을 대상으로, 한쪽은 가정에서 유산소 훈련을, 다른 쪽은 균형 훈련을 받게 한 뒤 비교한 연구다. 유산소 훈련군은 세션당 30분씩 주 5회, 최대심박수의 85%까지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결과는 눈에 띄었다. 6개월 시점에 유산소 훈련군의 SARA 점수는 평균 2.4점 개선된 반면, 균형 훈련군은 0.9점 개선에 그쳤다. 피로도와 최대산소섭취량(VO2max)에서도 유산소 훈련군이 더 나은 결과를 보였다. 다만 이 연구는 단일 센터, 62명이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시험이라는 점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저자들 스스로도 이 결과가 임상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향후 연구에서 신중하게 확인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임상 메모. 같은 연구에서 더 눈여겨볼 대목은 지속성이다. 유산소 훈련을 1년 넘게 이어간 환자는 SARA 점수 개선이 기저치 대비 3.81점까지 유지됐지만, 훈련을 줄이거나 중단한 환자는 효과가 다시 처음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결국 '어떤 운동이냐'만큼 '얼마나 꾸준히 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보행 적응 훈련, 회복이 아니라 대처 능력을 키운다
2026년 3월 Movement Disorders Clinical Practice에 발표된 연구는 또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지형 변화나 장애물,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이중과제 상황을 반영한 '보행 적응 훈련'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훈련이 운동실조 중증도 자체나 MRI상 변화는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실제 보행과 이동성은 개선시켰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 효과가 소뇌 기능이 좋아져서라기보다, 환자의 자신감이 커지고 과제 수행이 더 효율적으로 바뀌며 몸이 나름의 보상 전략을 익혔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척수소뇌변성증 재활의 목표는 '완치'나 '병의 진행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남아 있는 기능으로 더 안전하고 자신 있게 움직이도록 돕는 것이다.
실전에서 적용할 원칙들
여러 연구와 국내 임상 자료를 종합하면, 진료 현장에서 안내하는 원칙은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물리치료는 질병의 모든 단계에서 권고되며, 특히 협응 훈련은 운동 수행을 향상시키고 운동실조 증상을 줄여준다.
물리·작업·언어치료를 함께 병행하고 가능한 한 조기에 시작할 때 효과가 더 좋다는 것이 여러 연구의 공통된 제안이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무리한 운동으로 중심을 잃고 넘어져 골절상을 입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 한다.
혼자서 안정적으로 걷기 어려워지면 지팡이나 성인용 보행기 같은 보조기구 사용을 미루지 않는 것이 좋다.
고강도 운동은 균형 장애가 심한 환자에게는 낙상 위험을 높일 수 있으므로, 환자 개별 상태에 맞춰 강도를 조절하고 보호자나 치료사가 함께하는 환경에서 시행해야 한다.
최근에는 코어 안정성 운동, 비디오 기반 가정 훈련, 태극권처럼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방식들도 연구되고 있다. 다만 가정 프로그램은 순응도, 즉 환자가 실제로 꾸준히 해내는지가 늘 관건으로 지적된다. 재활은 병원에서 한두 번 받고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계속 이어가야 하는 습관에 가깝다.
임상적 의미와 남은 과제
이번 연구들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균형훈련 하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유산소 훈련, 보행 적응 훈련 같은 여러 접근을 환자 상태에 맞게 조합해볼 근거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다. 동시에 훈련을 중단하면 효과가 되돌아간다는 사실은, 재활을 '일시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물론 아직 조심해야 할 부분도 많다. 운동으로 병의 진행 자체를 멈출 수 있다는 식의 단정적 표현은 근거와 맞지 않는다. 혼합현실이나 로봇보행 같은 신기술도 아직 소규모 파일럿 연구 단계인 경우가 많아 과도한 기대는 경계해야 한다.
꾸준함을 이어갈 수 있는 곳에서
진료실에서 척수소뇌변성증 환자와 가족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이 병과 마주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특별한 기술보다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라는 사실이다. 하루 이틀의 강도 높은 재활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이고 그 상태를 옆에서 지켜봐 줄 사람이 있는 것이 훨씬 큰 힘이 된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들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걸음을 이어가고, 넘어짐을 걱정하지 않으면서 몸을 움직일 수 있도록 곁을 지키고 있다. 완치를 약속할 수는 없어도, 오늘 걸은 몇 걸음이 내일도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이 병을 마주한 환자와 가족에게 실질적인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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