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희귀질환 가족의 임신 전 유전 상담 체크리스트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10월 4일
3분 분량

지난달 진료실에 헌팅턴병 가족력을 가진 서른 중반 부부가 찾아왔다. 아이를 갖기 전에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물었고, 나는 가계도부터 그려보자고 답했다.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에게 임신과 출산은 단순한 축복을 넘어, 재발 위험을 가늠하고 선택지를 따져야 하는 복잡한 결정이 된다.

가계도 한 장이 상담의 시작이다

희귀질환 대부분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집계 시점 기준으로 국내 희귀질환자는 37만명, 중증 난치질환자는 75만명에 이르고, 5년 사이 27.4%나 늘었다는 통계도 있다. 신경계 희귀질환만 봐도 유전 방식은 질환마다 전혀 다르다. 헌팅턴병은 상염색체 우성 유전이라 부모 중 한쪽이 질환을 가지고 있으면 자녀에게 매 임신마다 50%의 확률로 전달된다. 반면 척수성 근위축증(SMA)처럼 상염색체 열성 질환은 양쪽 부모가 모두 보인자일 때만 발병하므로, 보인자 검사가 상담의 출발점이 된다. 같은 '유전질환'이라도 재발 위험률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리기 때문에, 정확한 유전 방식 확인 없이는 어떤 계획도 세우기 어렵다.

임상 메모. 헌팅턴병의 원인 유전자는 CAG 삼핵산염기서열이 반복되는 부위에 있다. 정상 유전자는 이 서열이 28회 이하 반복되지만, 돌연변이 유전자에서는 39회 이상 반복된다. 반복 횟수 하나가 질환 발현 여부를 가르는 셈이다.

원인 유전자를 모르면 선택지가 좁아진다

문제는 가족 내 원인 변이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원인 유전자를 알아도 착상 전 유전검사(PGT-M)를 적용하기 기술적으로 어려운 사례가 있고, 이런 경우에는 자연임신 후 산전 태아검사를 고려하게 된다. 착상 전 검사를 거쳤다 해도 배아 모자이크 현상이나 검사 기술의 한계로 일부 이상이 확인되지 않을 수 있어, 착상 전 유전진단 전반의 진단오류는 약 2% 정도로 보고된다. 그래서 임신이 확인된 뒤에도 융모막검사나 양수검사 같은 산전진단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과정이 권장된다.

헌팅턴병처럼 치료법이 없는 질환은 상황이 더 무겁다. 돌연변이 형질이 단순해 유전자 검사로 바로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로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은 드물다. 치료제도 없이 병의 진행을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병 전 예측 검사는 '받아야 한다'는 권유보다, 본인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다뤄져야 한다.

질병관리청이 내놓은 임신 전후 가이드

올해 질병관리청이 배포한 가이드는 이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다. 안전한 임신 준비의 첫걸음은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 중 희귀질환 진단자가 있다면 3대에 걸친 가계도를 정리하는 것이라고 안내한다. 여기에 기존 의무기록과 이전 검사 결과를 명확히 확인한 뒤 전문적인 유전상담을 진행하고, 필요에 따라 유전자검사를 병행하면 해당 질환이 상염색체 우성인지 열성인지, X-연관 유전인지, 미토콘드리아 유전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음 임신에서 자녀에게 재발할 위험도를 과학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가이드는 원인 유전자가 밝혀졌는지 여부와 임신 전·후 단계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구분해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반 국민용 리플릿과 의료진용 상담 참고자료가 함께 만들어졌고, 전국 희귀질환 전문기관과 유관 학회·협회에 배포될 예정이며 희귀질환 헬프라인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임신 전·후 체크리스트로 정리하면

진료실에서 환자와 가족에게 실제로 안내하는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본인·배우자·가족의 희귀질환 진단 이력을 포함한 3대 가계도 정리하기

  • 기존 의무기록과 이전에 받은 검사 결과 미리 확보하기

  • 유전자 검사에 앞서 유전상담을 먼저 받기

  • 원인 유전자가 확인된 경우 착상 전 유전검사(PGT-M) 허용 질환 목록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2025년 8월 기준 237개 질환이 지정돼 있으나 변경될 수 있다)

  • 원인이 불명확하거나 PGT-M 적용이 어려운 경우 자연임신 후 산전 확진검사(융모막검사·양수검사)를 고려하기

  • 만 35세 이상 고령 임신, 가족력, 특정 질환 빈도가 높은 경우, 초음파나 산전선별검사 이상소견이 있는 경우 산전진단 대상에 해당하는지 확인하기

  • 검사 결과를 받을 때는 가족이 함께 동석해 산정특례·추적검사 등 후속 절차까지 상의하기

검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환자가 희귀질환으로 진단되면 그 가족을 대상으로도 유전자 검사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확장된 진단과 모니터링, 그리고 가족계획이 목적이다. 가족계획을 위해서는 임신 중 산전 검사나 착상 전 유전검사를 함께 고려하게 된다. 다만 착상 전 검사를 거쳤더라도 임신 후 CVS나 양수검사로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권장된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 한다. PGT나 산전진단은 완치나 100% 예방을 보장하는 절차가 아니라, 위험을 미리 가늠하고 대비할 선택지를 넓혀주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임상 메모. 검사 결과를 전달할 때는 환자의 보호자나 가족이 동석하도록 권하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함께 대처하겠다는 신뢰 관계를 먼저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결과는 가급적 신속히 전달하고, 이후 산정특례나 추적검사 같은 후속 절차까지 함께 안내해야 한다.

PGT-M 허용 질환에 포함되지 않은 희귀질환이라도, 해당 질환을 진료하거나 연구하는 의료기관이나 학회가 주치의를 통해 추가 신청을 검토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다만 이런 절차는 자격을 갖춘 전문기관을 통해서만 진행되며, 제도 내용은 시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항상 가능하다'는 식의 단정은 피하는 것이 맞다.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가족에게

헌팅턴병이나 SMA 같은 신경계 희귀질환을 가진 환자와 가족을 진료하다 보면, 이들이 짊어지는 고민이 치료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다음 세대로 이어질 가능성까지 미리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도 신경계 희귀질환 환자를 돌보며, 환자 본인의 치료와 돌봄 못지않게 가족이 품고 있는 이런 질문들에 함께 답을 찾아가려 한다. 가계도 한 장을 정리하는 작은 발걸음이, 한 가족의 다음 세대를 조금 더 준비된 모습으로 맞이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희귀질환 관련해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폼페병 성인형, 계단 오르기 힘든 진짜 원인

성인형 폼페병에서 계단 오르기가 힘든 이유는 단순 체력 저하가 아니라 근위부 근육이 선택적으로 약해지는 질환 특이적 패턴 때문이다. 진단이 늦어지기 쉬운 이유와 함께 봐야 할 신호를 정리했다.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