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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의료(호스피스) 논의, 언제 시작해야 할까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10월 6일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10일

진료실에서 완화의료 이야기를 꺼내면 환자와 가족의 표정이 굳는다. 곧 죽는다는 선고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화의료는 포기의 신호가 아니라, 병이 아직 여유 있을 때 삶의 방향을 함께 정하자는 제안이다.

진단 초기, 완화의료를 꺼내기 어려운 이유

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를 비롯한 뇌신경계 희귀질환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완화의료라는 단어 자체를 입에 올리기가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아직 걸을 수 있고 말도 또렷한 환자에게 완화의료를 언급하면 '벌써 포기하는 거냐'는 반응이 돌아오기 쉽다. 그래서 많은 경우 이 논의는 자꾸 미뤄진다.

그런데 이 망설임이 오히려 환자에게서 중요한 기회를 빼앗는다. ALS는 팔다리의 움직임, 발음, 삼킴, 호흡 기능이 단계적으로 약해지는 질환이다. 아직 완치 치료법은 없고, 증상 진행을 늦추는 약물치료와 재활, 합병증 관리가 예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평균 생존기간이 4~5년 안팎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요한 점은 이 질환이 신체 기능은 먼저 잃어도 의식과 판단력은 비교적 오래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즉 환자 스스로 자신의 돌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창(window)'이 병의 초기에 열려 있다.

'호스피스는 임종 직전'이라는 오래된 오해

완화의료와 호스피스는 흔히 같은 말로 쓰이지만 엄밀히 다르다. 국내 제도상 완화의료는 질병의 진행 단계와 관계없이 제공될 수 있는 돌봄인 반면, 호스피스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말기환자를 대상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과거에는 호스피스 돌봄을 임종 임박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으로 여겼지만, 2014년 세계보건총회에서는 기대 여명 6개월 이내 환자만을 위한 종말기 돌봄이 아니라 생애 말기까지의 연속적인 돌봄 개념이 강조됐다. 이후 완화의료는 질환 치료와 단절된 돌봄이 아니라, 치료와 통합되어 조기부터 함께 가는 돌봄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ALS 환자의 완화의료 의뢰가 병의 후반부에 몰리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보고된다. 예후 예측이 어렵고, 환자마다 돌봄 요구가 달라지는 시점을 가늠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가 겹친다. 한 연구에서는 사전돌봄계획 수립이 완화의료 의뢰의 가장 흔한 이유였음에도, 실제로는 병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야 의뢰가 이루어져 더 일찍 개입할 기회를 놓친 것으로 나타났다.

진단 시점이 이상적인 시작점이라는 근거

해외 환자단체 자료는 완화의료가 ALS의 어느 단계에서든 시작할 수 있지만, 진단 시점에 도입하는 것이 다가올 증상에 미리 대비하고 예상하는 데 이상적이라고 안내한다. 완화의료는 진단 시점부터 이용 가능하며 삶의 질 유지와 고통 경감을 목표로 하는 반면, 호스피스 돌봄은 일반적으로 환자가 더 이상 적극적 치료를 추구하지 않는 생애 말기에 제공된다는 점에서 역할이 구분된다.

실제로 ALS 다학제 클리닉에서 이루어진 질적연구를 보면, 환자와 보호자는 당장의 증상 완화보다 앞으로의 병의 경과를 미리 안내받고 사전돌봄계획을 세우는 일을 더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완화의료를 '마지막 단계의 처방'이 아니라 '질환 여정을 함께 걷는 안내자'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임상 메모. 캐나다 오타와병원 ALS 클리닉의 전향적 연구에서는 완화의료 상담이 연구 동의 후 평균 33일 만에 이루어졌고, 초기 상담에 평균 70분 정도가 소요됐다. 환자와 가족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표준화된 설문상 기분이나 삶의 질에서 통계적으로 뚜렷한 개선은 확인되지 않았다. 조기 개입이 '증명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환자와 가족이 병의 방향을 함께 이야기할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는 분명했다.

국내 제도에서 확인해야 할 부분

한국의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팀을 이루어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 돌봄을 포함한 전인적 돌봄을 제공하는 체계로 운영된다. 다만 대상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근원적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내 사망이 예상되는 말기환자로 규정돼 있다. 소아청소년 완화의료는 진단 병명이나 질병 단계에 제한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성인 뇌신경계 희귀질환 환자가 이 제도를 어떤 조건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는 의료기관과 사례에 따라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 남아 있다. 그래서 '모든 환자가 원할 때 바로 호스피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보다, 진료 초기부터 담당 의료진과 함께 제도적 요건을 하나씩 확인해 가는 태도가 현실적이다.

임상적 의미, 그리고 가족이 기억할 것

치매처럼 점차 본인의 뜻을 표현할 능력을 잃어가는 질환에서는 '말할 수 있을 때' 논의를 시작하는 원칙이 더욱 중요하다. ALS 역시 인지 기능이 비교적 오래 보존되는 만큼, 호흡·연하·의사소통·영양 관리 같은 실질적 증상 관리와 함께 돌봄 계획을 일찌감치 이야기해 두는 다학제적 접근이 현실적인 모델이다.

  • 완화의료는 '치료 포기'가 아니라 치료와 함께 가는 돌봄이다

  • 호스피스는 말기 단계에 한정된 제도이지만, 완화의료는 진단 초기부터 시작할 수 있다

  • 조기 완화의료의 삶의 질 개선 효과는 연구마다 엇갈리므로, 과장된 기대보다는 '대화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이다

  • 국내 제도 적용 여부는 의료기관과 상담을 통해 사례별로 확인해야 한다

완화의료 논의를 미루는 것은 환자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되지만, 역설적으로 환자가 스스로 원하는 돌봄의 방향을 정할 기회를 늦추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진단 직후의 담담한 대화 한 번이, 훗날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덜 혼란스러운 시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로뎀요양병원이 함께 걷는 이유

로뎀요양병원에서는 뇌신경계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이 진단 초기부터 증상 관리와 돌봄 계획을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다학제적인 진료 환경을 마련해 가고 있다. 병의 단계마다 필요한 돌봄이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환자가 아직 많은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부터 곁에서 함께 길을 찾아가려 한다. 완화의료는 끝을 준비하는 절차가 아니라, 남은 시간을 환자답게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믿음으로, 로뎀요양병원은 오늘도 환자와 가족 곁을 지킨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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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련 영상과 로뎀요양병원 돌봄 안내

완화의료 논의를 준비하는 보호자는 아래 영상과 병원 안내를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실제 진료 범위, 입원 가능 여부 및 제도 적용은 환자 상태에 따라 상담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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