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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 환자의 백신 접종, 맞아도 괜찮을까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8일
4분 분량

진료실에서 보호자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 중 하나가 독감철이 되면 반복된다. "우리 아버지 면역이 약한데 백신 맞혀도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ALS라는 병 자체가 백신을 피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접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이런 질문이 반복될까

ALS는 운동신경세포가 서서히 소실되면서 근육이 약해지는 진행성 질환이다. 팔다리 힘이 빠지는 것부터 시작해 결국 호흡근까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환자와 가족들은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백신을 맞으면 오히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마치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무리하면 안 되는 것처럼, ALS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ALS는 면역체계 자체가 무너지는 병이 아니라 운동신경세포가 손상되는 병이다. 이 차이를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내 면역저하자 분류 기준을 봐도 선천성 면역결핍, HIV 감염, 만성 신부전, 백혈병, 장기이식 등은 포함돼 있지만 ALS는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다. 즉 ALS라는 진단명 자체가 백신 접종을 미루거나 피해야 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기존 접근의 한계, 애매하게 넘어가는 부분

문제는 진료 현장에서 이 부분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폐렴구균 백신만 해도 종류가 여러 가지고(PCV13, PCV15, PCV20, PCV21, PPSV23), 연령과 기존 접종력에 따라 순서와 간격이 복잡하게 나뉜다. 여기에 ALS라는 신경근육질환이 끼어들면 환자와 가족 입장에서는 "우리는 어디에 해당하나" 헷갈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ALS 관련 진료 지침에서는 다학제 관리, 호흡 재활, 삼킴장애 대응 같은 항목은 비교적 자세히 다뤄지지만 백신 접종을 별도 항목으로 세밀하게 안내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정작 가장 실질적인 질문, "이 병 걸린 사람이 백신 맞아도 되냐"에 대한 답은 각 병원, 각 의료진의 경험에 의존해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접근, ALS를 오히려 '백신이 더 필요한 상태'로 본다

최근 국제 ALS 환자단체 자료들을 보면 방향이 분명하다. ALS 환자는 백신을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감염 예방이 더 절실한 대상으로 접근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ALS가 진행되면 호흡근이 약해지고 기침을 통해 이물질이나 가래를 배출하는 힘도 함께 떨어진다. 이런 상태에서 독감이나 폐렴 같은 호흡기 감염이 겹치면 상황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실제로 만성 폐질환이 있는 사람이 독감에 걸리면 기도 부종, 호흡곤란, 만성 기침, 폐렴, 심한 경우 급성호흡곤란증후군까지 이어질 위험이 더 높다는 근거가 제시된다. ALS 환자는 폐 기능 자체가 서서히 떨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위험에 더 취약한 조건에 놓여 있는 셈이다. 국내 ALS 관리 자료에서도 호흡요법을 다루면서 독감 백신 접종을 표준 관리의 일부로 함께 언급하고 있다.

임상 메모. ALS 환자에게 접종을 미룰지 고민할 때는 "면역이 약해서"가 아니라 "호흡기가 약해져 있어서"라는 방향으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감염을 막는 쪽이 오히려 병의 진행을 편하게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백신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

국제 환자단체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백신은 크게 세 가지다.

  • 독감(인플루엔자) 백신 - 매년 접종, 계절 시작 전 미리 맞는 것이 권장된다

  • 폐렴구균 백신 - 65세 이상은 연령 기준으로, 만성질환이 있는 19~64세 성인도 접종 대상에 포함된다

  • 코로나19 백신 - 호흡기 감염 예방 목적으로 함께 언급된다

흥미로운 점은 독감 백신과 폐렴구균 백신을 같은 날 함께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거동이 불편해 병원 방문 자체가 부담인 진행기 ALS 환자라면, 두 백신을 한 번에 접종해 외출 횟수를 줄이는 방법을 주치의와 상의해볼 수 있다. 다만 폐렴구균 백신은 면역 반응이 가장 좋은 시기에 맞는 것이 유리하므로, 만약 면역에 영향을 주는 약물 치료를 앞두고 있다면 그 전에 접종을 마치는 것이 권고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다. 보체 억제제라는, 면역체계에 직접 작용하는 신약을 사용하는 일부 ALS 임상시험에서는 참가 조건으로 오히려 폐렴구균, 수막구균,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균 백신을 미리 접종받을 것을 요구한다. 이는 면역계에 영향을 주는 치료를 받을수록 백신 접종이 걸림돌이 아니라 안전장치로 취급된다는 뜻이다. ALS 자체가 백신 접종의 금기 사유가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임상적 의미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부분

정리하면, ALS 환자에게 백신을 권할 때의 핵심 메시지는 "이 병이 있어서 못 맞는다"가 아니라 "이 병 때문에 호흡기 합병증 위험이 높으니 오히려 더 챙겨야 한다"는 쪽에 가깝다. 특히 삼킴장애나 기침 반사 저하가 이미 진행된 환자라면, 감염 한 번이 전체 경과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 있기 때문에 예방접종의 의미가 더 커진다.

다만 솔직하게 짚어야 할 부분도 있다. "백신이 ALS 발병이나 진행에 영향을 준다"는 식의 주장에 대해서는, 이를 뒷받침하거나 반박할 만한 대규모 연구 자료가 확인되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근거가 없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아직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은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이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또한 면역억제 치료를 병행하는 환자의 생백신 접종 가능 여부는 개별 약제와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일괄적인 답을 내리기보다는 주치의와의 개별 상담이 필요하다.

진료 현장에서 드리고 싶은 말

백신 하나를 두고도 환자와 가족은 여러 밤을 고민한다. 그 마음은 병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근거 없는 걱정으로 꼭 필요한 예방접종을 미루는 일이 없도록, 진료 현장에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짚어드리려 한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ALS 환자의 호흡 관리와 감염 예방을 함께 살피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필요한 예방접종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병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피할 수 있는 위험을 하나씩 줄여나가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가족이 조금 더 편안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작은 실천들이 모여 남은 시간을 더 안정적으로 지켜내는 힘이 된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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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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