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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 보이스피싱, 예방접종처럼 미리 준비해야 하는 이유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10월 1일
3분 분량

얼마 전 진료실에서 한 보호자가 통장 잔고가 이상하다며 찾아왔다. 어머니가 몇 달째 함께 지내던 간병인에게 카드 비밀번호를 알려줬고, 생활비 정리라는 명목으로 여러 차례 현금이 빠져나간 뒤였다. 치매 환자의 금융사기는 낯선 전화 한 통이 아니라, 믿었던 사람의 손을 거쳐 조용히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다.

판단력이 흐려지면 지갑도 흔들린다

치매는 기억력만 무너뜨리는 병이 아니다. 상황을 논리적으로 따져 의심하는 능력, 즉 판단력과 계산력이 함께 떨어진다. 그래서 낯선 사람의 전화나 방문 요구에 예전처럼 경계심을 갖기 어려워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간병인이나 가사도우미, 심지어 이웃처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환자의 재산을 가로채는 사례도 드물지 않게 보고되고 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가족처럼 믿게 된 상대가 지갑과 서류를 살펴 금융카드와 비밀번호를 파악한 뒤, 생활비 정리를 핑계로 현금을 인출하는 식이다.

통계로도 이런 흐름이 드러난다. 보이스피싱 전체 발생 건수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60대 이상 고령층이 차지하는 피해 비중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병이 진행될수록 위험은 낯선 사람뿐 아니라 가까운 관계 안에서도 자란다는 뜻이다.

경계심 교육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

그동안 고령자 대상 사기 예방은 대부분 '조심하라'는 캠페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일선 은행 창구에서도 의심스러운 정황이 보여도 정작 본인은 전화금융 사기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인지기능이 이미 저하된 환자 본인의 경계심에만 기대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법적 장치인 성년후견제도도 만능은 아니다. 후견 개시 요건이 까다롭고 절차가 복잡한 데다, 당사자와 가족이 느끼는 낙인감 때문에 실제 활용률이 높지 않다. 특히 판단능력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진단 초기 단계에서는 적절한 수단이 되기 어려워, 후견 이전의 공백 구간에서 금융 착취 위험이 오히려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민간 신탁 역시 자산 규모가 큰 경우 위주로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어 접근성이 낮다는 지적이 있다.

수법 자체도 진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화로 끝나지 않고 피해자를 직접 은행 창구로 유도해 현금이나 수표로 고액을 인출하게 만드는 방식이 늘고 있다. 계좌 이체 단계의 자동화 필터만으로는 막기 어려운 흐름이다.

2026년, 제도적 안전장치가 새로 생긴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26년 4월부터 국민연금공단을 통한 '치매안심재산관리지원서비스' 시범사업이 시행된다. 치매 진단 후 판단력이 흐려져 보이스피싱을 당하거나 가족 등에 의한 경제적 학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로, 환자 본인이나 후견인의 의사에 따라 국민연금공단과 신탁 계약을 맺어 재산을 위탁하면 병원비·요양비·공과금 등 일상생활 비용으로 안정적으로 지출되도록 관리해준다.

  • 신탁재산 상한은 10억 원

  • 올해 시범사업 목표는 750명

  • 주요 대상은 치매환자·경도인지장애 진단자 중 재산관리 위험이 있는 기초연금 수급자

  • 신탁 수수료는 무료가 원칙이나 고액자산가는 실비 수준 부담 가능

다만 이는 전국 본사업이 아니라 시범사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750명을 시작으로 2028년 본사업 전환, 2030년 1만1000명 이상까지 단계적 확대를 계획하고 있어, 아직은 대상과 규모가 제한적이다.

은행 서비스는 조합해야 힘을 발휘한다

공공신탁 서비스와 별개로, 이미 활용 가능한 은행권 예방 장치도 여러 개다. 각각 단독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여러 개를 함께 신청하면 사기범이 이용할 경로를 크게 줄일 수 있다.

  • 지연이체서비스: 이체 후 일정 시간(최소 3시간 이상 단위로 선택)이 지나야 실제 송금되도록 설정

  • 지연인출제도: 100만원 이상 입금 시 30분간 자동화기기 출금·이체 제한(단, 은행 영업시간 중 창구 거래에는 적용되지 않음)

  • 입금계좌 지정서비스: 지정하지 않은 계좌로는 하루 최대 100만원까지만 송금 가능

  • 해외 IP 차단 서비스: 국내 IP대역이 아니면 이체 자체를 막음

  • 입출금 알림·지정인 알림 서비스: 창구 출금이나 카드대출 같은 위험 거래를 가족에게 즉시 알림

이 중 입출금 알림 서비스와 지정인 알림 서비스는 만 65세 이상 본인 또는 가족이 함께 은행 창구를 방문해 신청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야간·해외 결제 차단, 비대면 계좌 개설 제한 같은 안심차단 서비스도 명의도용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안내해드리곤 한다. 다만 세부 조건은 은행·카드사마다 다르므로, 주거래 은행뿐 아니라 자주 쓰는 카드사에도 같은 서비스를 별도로 신청해두시라고 말씀드린다.

임상 메모. 지연인출제도는 창구 거래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최근처럼 피해자를 직접 은행 창구로 유도해 현금을 인출시키는 수법에는 이 장치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호자에게 반드시 설명한다.

진단 초기가 재산관리를 논의할 최적의 시점

진료 현장에서 느끼는 것은, 치매나 경도인지장애 진단을 내리는 순간을 약물치료 시작 시점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재산관리 계획을 함께 논의하는 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 의사표시가 가능한 경도인지장애 단계이거나 치매 초기일 때 본인이 직접 신청해두면, 이후 인지능력이 심하게 저하되더라도 처음 원했던 방식대로 재산이 관리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법적 구속력이 가장 강한 성년후견제도는 절차와 낙인감 부담이 있는 만큼, 판단능력이 남아있는 초기에 임의후견계약을 미리 체결해두는 방안을 함께 안내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부부간에라도 치매가 되기 전에 임의후견을 정해두라고 권한다. 또한 60세 이상은 누구나 시·군·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치매인지선별검사를 무상으로 받을 수 있으니, 조기 발견 자체가 재산관리 준비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로뎀요양병원이 함께 챙기는 것

보이스피싱은 한 번의 주의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병의 경과와 함께 계속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입원과 치료 과정뿐 아니라, 보호자가 은행 예방 서비스나 공공신탁 제도 같은 정보를 놓치지 않도록 진료 중간중간 함께 짚어드리려 한다. 환자와 가족이 재산 문제로 두 번 상처받지 않도록, 진단 초기부터 차근차근 준비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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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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