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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강박으로 오인된 CJD, 놓치기 쉬운 신호들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29일
3분 분량

최근 진료실에서 몇 달째 우울증 치료를 받다가 갑자기 걸음이 이상해지고 말수가 줄어든 환자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노년기 우울증의 자연스러운 악화로 여겨졌지만, 검사를 진행하며 예상치 못한 질환의 이름이 떠올랐다.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흔히 CJD로 불리는 이 병은 정신과 진료실에서 가장 늦게 의심받는 질환 중 하나다.

정신과 증상 뒤에 숨은 프리온병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은 비정상적으로 접힌 프리온 단백질이 뇌 조직을 빠르게 손상시키는 희귀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전체 CJD 중 대부분은 산발성으로 발생하고, 일부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성 형태로 나타난다. 흔히 교과서에는 급속 진행성 치매, 근간대경련, 운동실조가 CJD의 대표 증상으로 소개되지만, 이 세 가지는 병이 상당히 진행된 이후에야 뚜렷해지는 경우가 많다.

정작 병의 초입에서는 우울, 불안, 무감동, 과민성, 수면장애, 심지어 환각이나 강박 같은 정신과적 증상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병의 전체 경과를 놓고 보면 상당수 환자에서 정신과 증상이 관찰되며, 일부는 이런 증상만으로 병원을 처음 찾는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는 신경학적 이상이 뚜렷하지 않아 원발성 정신질환과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기존 진료 흐름의 한계

정신건강의학과에는 우울, 불안, 강박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매일 방문한다. 이런 환자 대부분은 실제로 원발성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므로, 임상의가 매 사례마다 기질적 신경계 질환을 의심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더구나 CJD 초기에는 뇌영상이나 뇌파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이유로 진단이 늦어지는 일이 생긴다.

실제로 노년기에 처음 발병한 정신병적 증상으로 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가, 뇌영상과 뇌파가 애매한 상태로 시간을 보낸 뒤에야 뇌척수액 검사를 통해 CJD가 확진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강박장애로 진단받고 수개월간 약물치료를 받았지만 호전이 없다가, 뒤늦게 인지저하와 근간대경련이 나타나면서 CJD로 밝혀진 경우도 있다. 전환장애나 불안장애로 시작해 짧은 기간에 CJD로 진단이 바뀐 사례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이런 사례들의 공통점은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신호가 상당 기간 무시됐다는 점이다.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검사들

다행히 최근에는 생전 진단을 도와주는 검사 도구들이 발전했다. 뇌척수액에서 확인하는 14-3-3 단백, 총 tau 단백, 그리고 RT-QuIC라는 검사법이 대표적이다. 이 중 RT-QuIC는 여러 연구에서 단일 검사로는 가장 우수한 정확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MRI 확산강조영상(DWI) 역시 특징적인 신호 변화를 잡아내면서 진단에 큰 도움을 준다.

다만 이 검사들 중 어느 하나도 완벽하지는 않다. 14-3-3 단백은 민감도는 높지만 다른 신경계 질환에서도 상승할 수 있어 특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RT-QuIC 역시 병 초기에는 음성으로 나왔다가 병이 진행하면서 뒤늦게 양성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고, 극히 드물게는 확진된 프리온병임에도 계속 음성으로 남는 사례도 있다. 그래서 한 가지 검사 결과만으로 CJD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고, 임상적 의심이 강하다면 여러 검사를 함께 확인하거나 시간을 두고 반복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임상 메모. 노년기에 새로 시작된 우울·정신병 증상이 기존 정신과 병력 없이 나타났고, 통상적 치료에 반응하지 않으면서 수 주에서 수 개월 사이 보행 이상이나 말투 변화가 동반된다면 CJD를 감별진단에 포함해야 한다.

임상적으로 무엇을 놓치지 말아야 하나

정신과 진료 현장에서는 우울이나 강박, 불안 증상을 보이는 모든 환자를 CJD 의심 대상으로 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치료 저항성'과 '빠른 진행', 그리고 '신경학적 동반 징후'라는 세 가지 조합이 함께 나타난다면 신경과 협진과 뇌파, MRI, 필요시 뇌척수액 검사를 조기에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변화하는 양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는 태도 자체가 조기 발견의 핵심이 된다.

국내에서는 CJD가 의심되는 경우 질병관리청 신고 체계와 전문가로 구성된 사례판정위원회를 통해 표준화된 분류가 이루어지고, 확진 이후에는 산정특례 등록 절차로 연결될 수 있다. 다만 CJD는 현재까지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는 질환이므로, 조기 진단이 곧 생존 연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조기 인지의 진짜 의미는 환자와 가족이 남은 시간을 어떻게 준비할지, 돌봄 계획을 어떻게 세울지를 앞당겨 논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 노년기에 갑자기 시작된 우울·불안·강박 증상, 특히 기존 정신과 병력이 없는 경우

  • 표준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고 수 주~수 개월 내 빠르게 악화되는 경과

  • 인지저하, 보행 이상, 근육 경련, 말투 변화 등 신경학적 징후 동반

  • MRI, 뇌파, 뇌척수액 검사 결과가 애매하더라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태도

남은 시간을 함께 준비하는 것

CJD는 진단이 늦어질수록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남은 시간이 짧아지는 병이다. 그래서 정신과적 증상 이면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세심한 관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단이 확정된 이후에는 치료보다 돌봄의 질이 환자의 남은 시간을 좌우한다. 로뎀요양병원은 프리온병처럼 빠르게 진행하는 신경계 질환을 겪는 환자와 가족이 남은 시간을 존엄하게 보낼 수 있도록, 세심한 관찰과 안정적인 돌봄 체계로 함께하고 있다. 진단 앞에서 막막함을 느끼는 가족들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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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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