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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형 파킨슨증, 지팡이와 보행기 선택 기준은 다르다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10월 10일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10월 10일

지난달 진료실에서 PSP(진행성핵상마비) 환자 보호자가 지팡이를 사드렸는데 오히려 넘어지는 횟수가 늘었다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찾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비정형 파킨슨증에서는 '경하면 지팡이, 심하면 보행기'라는 단순한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질환마다 낙상이 일어나는 방향과 원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왜 비정형 파킨슨증에서는 낙상이 더 중요한 문제인가

비정형 파킨슨증으로 분류되는 진행성핵상마비(PSP), 다계통위축증(MSA), 피질기저핵변성(CBD) 등은 일반 파킨슨병보다 균형장애가 빨리, 그리고 더 심하게 찾아온다. 특히 PSP에서는 낙상이 단순한 일상 속 불편이 아니라 독립적인 보행 능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 수 있는지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꼽힌다. 발병 초기, 그러니까 진단받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점부터 자세가 불안정해지고 넘어지는 환자가 많다는 점이 PSP의 특징적인 임상 양상이다.

PSP 환자는 무릎과 몸통을 쭉 편 채 넓은 보폭으로 걷다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 균형을 잃는 경우가 많다. 임상에서는 이를 '술 취한 선원 걸음'이라 부르기도 한다. 자세를 바로잡는 반사 기능 자체가 손상되어 있어 낙상이 예측 불가능하게, 그것도 주로 뒤쪽으로 넘어지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 일반 파킨슨병과 다르다.

MSA는 양상이 또 다르다. 자율신경계 이상으로 인한 기립성 저혈압과 배뇨장애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동반되고, 여기에 경직과 보행장애가 겹친다. 서 있거나 걷는 도중 혈압이 갑자기 떨어지면서 어지럼증이나 실신 위험이 생기는 것이 MSA 환자의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다. 또한 MSA 환자 가운데 상당수에서 걸음이 얼어붙듯 멈추는 동결보행이 동반된다는 보고도 있다.

기존 보조기기 처방의 한계

진료 현장에서는 균형장애가 있는 환자에게 습관적으로 지팡이나 보행기를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상운동질환 분야의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보행장애에 적합한 보조기기를 선택하기 위한 확립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즉 지금까지의 보조기기 처방은 상당 부분 경험에 의존해왔다는 뜻이다.

더 주의해야 할 점은, 일부 보조기기가 오히려 보행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다. 시각이나 청각 신호 없이 사용하는 일반 지팡이, 그리고 일반 보행기나 2륜 보행기는 보행 속도와 보폭을 줄이면서도 동결보행이나 낙상 자체를 줄이는 데는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는 분석이 있다. 반면 바닥에 빛으로 선을 비춰주는 시각 단서나 박자를 맞춰주는 청각 단서를 함께 쓴 경우에는 동결보행 횟수가 줄고 보폭이 늘어나는 개선이 관찰됐다.

들어 올려서 옮기는 방식의 픽업형 보행기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매 걸음마다 보행기를 들어 올렸다 내려놓는 동작 자체가 균형이 약한 환자에게는 오히려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어, 파킨슨 계열 질환에서는 바닥에 바퀴가 달려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보행기가 더 선호된다는 의견이 많다.

질환별로 달라지는 선택 기준

그렇다면 실제로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 일반적으로는 경한 균형장애에는 지팡이를, 보행 중 균형이 더 심하게 흔들리는 환자에게는 네 바퀴 보행기를 권하는 원칙이 통용된다. 고령 파킨슨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네 바퀴 보행기나 동결보행 특화형 보행기를 사용한 환자군이 지팡이나 일반 보행기, 또는 보조기기를 쓰지 않은 환자군보다 동결보행과 낙상 직전 상황, 실제 낙상 횟수가 더 적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PSP처럼 자세 반사 자체가 무너져 뒤로 넘어지는 경향이 강한 질환에서는, 한쪽만 짚는 지팡이가 충분한 지지력을 주지 못할 수 있다. 일부 파킨슨 환자 전문 물리치료사들은 아예 지팡이 사용을 권하지 않기도 하는데, 한쪽 지지대가 오히려 추가적인 불균형을 만들거나 가구에 걸려 넘어지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라면 균형장애가 경미해 보여도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안정적인 바퀴형 보행기를 고려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 PSP – 뒤로 넘어지는 후방 낙상이 특징, 조기부터 안정성 높은 보행기 고려 필요

  • MSA – 기립성 저혈압 동반, 보조기기 선택 전 혈압 반응 평가가 우선

  • 동결보행 동반 시 – 일반 보행기보다 시각·청각 단서 제공형, U-step형 등 특화 기기 고려

  • 공통 – 픽업형보다 바퀴형 보행기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의견이 많음

MSA에서는 보조기기보다 혈압 관리가 먼저일 수 있다

MSA 환자에게서 특히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기립성 저혈압이 심한 경우에는 서 있거나 걷는 것 자체가 실신 전 증상도 없이 불가능해질 만큼 악화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보조기기를 쥐여줘도 보행 자체가 어렵다. 실제로 혈압을 조절하는 치료적 개입이 먼저 이루어진 뒤에야 네 바퀴 보행기만으로 걷는 것이 가능해진 사례도 보고된 바 있다. 즉 MSA 환자에서는 '지팡이냐 보행기냐'를 고민하기 전에, 일어설 때와 걷는 중의 혈압 변화부터 먼저 점검하는 것이 순서라는 의미다.

임상 메모. MSA 환자에서 동결보행이 동반되면 전반적인 운동 중증도가 더 나쁘고 일상생활 수행 능력도 낮은 경향이 관찰된다. 동결보행은 흔히 파킨슨병의 증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PSP나 MSA 같은 비정형 파킨슨증에서 오히려 더 흔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가족들에게도 설명해드리곤 한다.

임상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

정리하면, '균형장애가 가벼우면 지팡이, 심하면 보행기'라는 원칙은 출발점일 뿐 비정형 파킨슨증에서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PSP라면 뒤로 넘어지는 패턴을 염두에 두고 지팡이보다 바퀴형 보행기를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고려할 필요가 있고, MSA라면 보조기기 선택에 앞서 기립성 저혈압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 동결보행이 동반된다면 일반 보조기기보다 시각·청각 단서를 활용하는 방식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할 부분이다.

다만 분명히 해둘 것은, 보조기기를 바꾼다고 해서 낙상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부 연구에서는 보조기기가 걸음 속도와 보폭을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동결보행이나 낙상 발생 자체에는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못했다고 보고하기도 한다. 결국 기기 하나에 의존하기보다, 물리치료사가 걷는 속도와 방향 전환 시 안정성, 동결보행 유무, 혈압 변화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개인에게 맞는 조합을 찾아가는 과정이 가장 근거에 부합하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로뎀요양병원이 함께 고민하는 이유

보행 보조기기 하나를 고르는 일도 비정형 파킨슨증 환자와 가족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어떤 기기가 맞는지, 언제 바꿔야 하는지 매번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환자 한 명 한 명의 걸음걸이와 낙상 양상을 꾸준히 관찰하면서, 질환의 진행 단계에 맞는 보행 환경을 함께 찾아가고 있다. 완벽한 정답이 없는 영역이기에 더더욱, 곁에서 세심하게 지켜보고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환자의 하루하루를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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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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