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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어눌해질 때, AAC 기기는 언제부터 준비할까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17일
3분 분량

진료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가장 먼저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말이다. 손발이 굳는 것보다, 표정이 사라지는 것보다, 말이 어눌해져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순간을 더 힘들어하는 가족이 많다. 비정형 파킨슨증에서는 이 변화가 병의 아주 이른 시기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먼저 말해두고 싶다.

왜 말이 먼저 무너지는가

PSP(진행성핵상마비), MSA(다계통위축증), CBD(피질기저핵변성) 같은 비정형 파킨슨증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걸음이나 손동작보다 말이 먼저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목소리가 작아지고, 발음이 뭉개지고, 문장을 시작하려 해도 첫 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증상은 마비말장애(구음장애)와 말실행증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겹쳐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PSP 환자 7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여러 아형에 걸쳐 마비말장애와 말실행증이 흔히 관찰되었고, 말실행증이 있는 환자군의 의사소통 부담 점수가 없는 환자군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다만 마비말장애의 중증도와 의사소통 부담 사이의 상관은 그리 뚜렷하지 않았는데, 이는 단순히 발음이 얼마나 정확한가보다 말을 시작하고 이어가는 과정 자체의 어려움이 실생활 의사소통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뜻으로 읽힌다.

말실행증이 원발성으로 서서히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데, 처음에는 경미한 조음 오류 정도로 시작했다가 다른 운동·인지 증상이 겹치면서 결국 무언증 단계로 넘어가기도 한다. 즉 말장애는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경과를 밟는다.

언어치료만으로는 부족한 이유

말이 어눌해지면 흔히 언어재활사를 통한 조음훈련이나 호흡훈련을 먼저 떠올린다. 실제로 초기에는 이런 훈련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진행성 신경퇴행질환에서는 발음 자체를 훈련으로 되돌리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근육과 신경의 퇴행이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서, 훈련만으로 명료도를 유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이 임상 현장에서 꾸준히 나온다.

그래서 말실행증·마비말장애 치료의 목표는 '완치'가 아니라 각 병의 단계에서 의사소통과 사회적 참여를 최대한 유지하는 쪽으로 맞춰진다.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보완대체의사소통, 흔히 AAC라 부르는 도구들이다.

임상 메모. AAC는 남아 있는 말을 보완하는 '증강' 도구와, 말이 거의 불가능해졌을 때 이를 대체하는 '대체' 도구를 모두 포괄한다. 병이 진행하면서 환자가 쓰는 기기의 종류도 함께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AAC,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단계별 전략으로

진료 중 보호자들에게 자주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AAC를 '말이 완전히 안 될 때 어쩔 수 없이 쓰는 기기'로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오히려 말이 아직 어느 정도 가능한 시기부터 언어재활사와 함께 말장애의 유형과 진행 양상을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그에 맞춰 AAC 도입 시점을 미리 계획해두는 편이 실제로는 더 도움이 된다.

AAC 기기는 무보조 몸짓이나 간단한 그림판 같은 낮은 단계부터, 음성출력기기(SGD), 시선추적 기술을 활용한 고기능 기기까지 폭이 넓다. 문제는 이 스펙트럼 안에서 '무엇이 이 환자에게 맞는가'를 판단하는 일이 비정형 파킨슨증에서는 특히 조심스럽다는 점이다.

  • PSP: 수직 방향의 안구운동장애(수직 시선마비)가 흔해, 시선추적 기반 AAC 사용 자체가 제한될 수 있다

  • MSA-C(소뇌형): 상지 운동실조와 시각 장애가 겹쳐 정밀한 입력 기기 조작이 어려울 수 있다

  • 인지저하가 동반된 경우: 기기 조작 학습 자체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다

즉 '최신 시선추적 기기가 가장 좋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은 위험하다. 환자마다 남아 있는 안구운동, 손 기능, 인지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개별 평가를 거쳐 기기를 선택해야 한다.

수용의 문제, 그리고 국내 지원 체계의 현실

AAC 도입에서 의외로 중요한 변수는 기기 성능이 아니라 환자 본인의 심리적 수용이다. 말을 잃어가는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든데, 여기에 낯선 기기까지 배워야 한다는 부담이 더해지면 거부감이 커질 수 있다. 그래서 임상에서는 AAC를 갑자기 들이밀기보다, 아직 말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때 자연스럽게 익숙해지도록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권한다.

국내 현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AAC 관련 지원 사업은 근로 장애인이나 구직 희망자 등 특정 대상에 한정된 경우가 많고, 교육지원청·장애인고용공단·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등으로 전달체계가 나뉘어 있어 통합적으로 안내받기 어려운 구조다. 일부 지자체는 휠체어형·책상형 거치대, 스위치 인터페이스 같은 부속 기기까지 포함한 보조기구 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서류심사와 현장평가를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어 시간이 걸린다. 비정형 파킨슨증처럼 중년 이후 발병하는 질환의 환자·보호자는 거주 지역 보조기기센터나 장애인복지관, 보건소에 미리 문의해두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결국 남는 것은 '전하고 싶은 마음'

AAC 기기는 말을 되돌려주는 치료가 아니다. 그보다는 줄어드는 말을 붙잡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계속 전할 수 있게 돕는 도구에 가깝다. 병이 진행해도 가족에게 '고맙다', '괜찮다' 한마디를 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든다.

로뎀요양병원에서도 비정형 파킨슨증 환자를 돌보며, 말이 어려워지는 시기를 두려움이 아니라 준비의 시간으로 여기려 노력한다. 언어재활사와의 정기적 평가, 환자 개개인의 신체·인지 상태에 맞춘 AAC 상담, 그리고 가족이 함께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 결국 환자의 말 한마디를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온전히 지켜내는 길이라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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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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