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후 깜빡깜빡, 혈관성 인지장애의 경과
-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 8월 13일
- 4분 분량
뇌졸중으로 입원했던 환자가 퇴원 후 외래에 와서 하는 말은 의외로 마비나 언어 문제가 아니라 "자꾸 깜빡한다", "물건을 어디 뒀는지 모르겠다"는 호소인 경우가 많다. 팔다리는 멀쩡한데 머리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 변화는 혈관성 인지장애라는, 뇌졸중의 또 다른 얼굴이다.
마비 없이도 찾아오는 뇌졸중의 후유증
뇌졸중 환자와 보호자는 흔히 재활을 마비나 언어장애 회복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국내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자료에 따르면 뇌졸중 환자의 약 60%에서 발병 후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인지영역 장애가 확인된다. 인지기능 저하는 뇌졸중 회복 전체 결과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인자로 꼽힌다.
혈관성 인지장애(vascular cognitive impairment, VCI)는 뇌졸중이나 만성 혈관질환으로 인해 생기는 인지기능 저하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예전에는 혈관성 치매라는 용어만 썼지만, 최근에는 치매 단계에 이르지 않은 경미한 인지 저하까지 포괄해 혈관성 인지장애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 치매로 진단되기 전 단계까지 넓게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혈관성 치매는 알츠하이머병과 경과가 다르다. 중풍을 앓고 난 후 갑자기 인지기능이 뚝 떨어졌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모든 환자가 그런 급격한 경과를 보이는 것은 아니다. 작은 혈관들이 서서히 좁아지거나 막히는 경우에는 서서히 나빠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또 초기부터 한쪽 마비, 발음이 어눌해지는 구음장애, 삼킴곤란, 보행장애, 소변 실금 같은 신경학적 증상을 함께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발생률 수치, 왜 이렇게 제각각일까
진료실에서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뇌졸중을 앓으면 몇 퍼센트가 이렇게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문헌마다 수치 편차가 상당히 크다. 한 메타분석은 뇌졸중 환자의 약 3분의 1이 뇌졸중 후 인지장애를 겪는다고 보고했고, 다른 최신 리뷰는 전 세계 발생률을 20~80%로 넓게 잡으면서 급성기에는 최대 90%까지 인지장애가 관찰된다고 정리했다. 또 다른 문헌은 급성기 치료가 발전했음에도 생존자의 30~70%에서 장기적 인지장애가 남는다고 지적한다.
국가별 편차도 크다. 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는 미국 41.4%, 호주 58.5%, 싱가포르 55.3%, 인도 45.1%로 뇌졸중 생존자 중 인지장애 비율이 나라마다 다르게 보고됐다. 이런 차이는 실제 질병 양상의 차이라기보다, 무엇을 인지장애로 정의했는지, 언제 검사했는지, 어떤 환자군을 대상으로 했는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떤 한 숫자만 보고 "내 경우는 이렇겠구나" 단정하기보다, 편차가 큰 이유를 이해하는 편이 실제 도움이 된다.
초기 회복이 곧 안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임상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뇌졸중 초기의 인지장애는 시간이 지나며 상당 부분 회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기서 안심하고 넘어가면 안 된다. 초기에 인지장애가 있던 환자 중 최대 3분의 1은 5년 이내에 치매로 진행한다는 보고가 있고, 초기에 회복된 것처럼 보이는 경우조차 이후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다. 즉 "초기 회복"이 "장기적으로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국의 한 장기 코호트 연구는 이런 경과를 잘 보여준다. 뇌졸중 후 3개월 시점에 인지장애 유병률이 24%였는데, 5년 후에도 22%, 14년 후에도 21%로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 다만 작은 혈관이 막히는 소혈관 폐색이나 열공경색이 있었던 환자군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장애가 유의하게 진행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이는 뇌졸중의 유형에 따라 장기적 경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임상 메모. 인지장애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치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적절한 개입 없이 방치할 경우 뇌졸중 후 치매로 진행할 위험이 있고, 이는 생존기간 단축과도 관련이 있다는 보고가 있어 초기 진단만큼이나 이후 추적 관찰이 중요하다.
왜 아직 '이 약 하나면 된다'는 답이 없을까
보호자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지점은 여기다. 2024년 개정된 중국 뇌졸중학회의 혈관성 인지장애 진료지침도 현재 이 질환에 특이적인 치료법은 없다고 명시한다. 알츠하이머병은 이미 여러 증상완화·질병조절 약제가 승인돼 있는 반면, 혈관성 인지장애는 치료제 개발이 상대적으로 더디게 진행돼 왔다는 것이 국제 학술지의 평가다.
다만 이것이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도네페질, 갈란타민, 메만틴 같은 인지증강제는 혈관성 치매에서, 특히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함께 있는 경우 인지기능을 다소 개선시킨다는 근거가 있다. 만능 해법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는 선택지라는 의미다.
재활 측면에서도 아직 표준화된 '최선의 프로그램'이 확립돼 있지는 않다. 최근에는 뇌졸중을 특정 부위만의 국소 병변이 아니라, 뇌 전체 네트워크의 연결성이 흐트러지는 질환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힘을 얻고 있다. 특정 인지 영역 하나만 훈련하는 전통적 접근으로는 뇌가 스스로 회로를 재구성하는 복잡한 과정을 충분히 다루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 전환은 앞으로 재활 전략이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는 방향을 보여준다.
결국 관건은 조기 발견과 혈관 위험인자 관리
특효약이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조기 발견이다. 국제 지침들은 임상적으로 명확한 뇌졸중뿐 아니라 일과성 허혈발작, 영상에서만 확인되는 무증상 뇌졸중, 심혈관질환, 유의한 혈관 위험요인이 있는 사람 모두를 혈관성 인지장애 고위험군으로 보고, 급성기와 발병 3~6개월 시점 두 단계로 인지 평가를 시행할 것을 권고한다. 본인이나 가족이 인지·지각·기능적 변화를 느낀다면 선별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둘째는 이차예방, 즉 혈관 위험인자 관리다. 고혈압을 적극적으로 조절하고 고혈당을 관리하는 것이 인지저하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가 쌓이고 있다. 다시 말해 뇌졸중 재발을 막기 위한 혈압·혈당 관리가 곧 인지장애를 막기 위한 관리이기도 한 셈이다.
급성기 및 퇴원 전 1차 인지 선별검사, 발병 3~6개월 시점 2차 평가
고혈압·고혈당 등 혈관 위험인자의 지속적 관리
인지증강제는 일부 환자군에서 제한적이지만 유의미한 효과 기대
표준화된 최적 재활 프로그램은 아직 확립 중, 개인별 접근 필요
일상 회복을 돕는 현실적인 제도
혈관성 인지장애로 일상생활 수행이 어려워진 경우, 국내 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뇌혈관질환으로 장애인복지법이 정한 후유 장애가 남았다면 판정 시기에 맞춰 장애 등록을 고려할 수 있고, 65세 이상이거나 노인성 질환에 해당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통해 일상생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기요양급여 대상이 될 수 있다. 구체적인 등급 기준이나 절차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공식 창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진료실에서 전하고 싶은 말
혈관성 인지장애는 무섭게만 들리는 진단명이지만, 실제 경과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환자는 시간이 지나며 상당 부분 회복되고, 어떤 환자는 서서히 진행한다. 중요한 것은 이 불확실성 앞에서 손 놓고 있지 않는 것이다. 조기에 인지기능을 평가하고, 혈압과 혈당 같은 위험인자를 꾸준히 관리하며, 필요할 때는 약물과 재활을 병행하는 것만으로도 경과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뇌졸중 후 나타나는 인지 변화를 단순한 '나이 탓', '원래 그런 것' 정도로 넘기지 않고, 정기적인 평가와 혈관 위험인자 관리, 개인별 재활을 함께 살피고 있다. 마비가 없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고, 작은 변화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결국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길이라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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