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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말이 어눌해진 부모님, 실어증 신호일까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8일
3분 분량

지난달 진료실에 아버지를 모시고 온 보호자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제까지 멀쩡하시던 분이 오늘 아침부터 말이 어눌해요, 치매인가요." 나는 먼저 이렇게 되물었다. "며칠 사이였나요, 아니면 몇 시간 사이였나요." 이 한 가지 질문이 응급실로 갈지, 외래 검사를 예약할지를 가르는 첫 갈림길이다.

말이 어눌하다는 표현 속에 숨은 여러 병

보호자들은 흔히 "말이 어눌해졌다"는 한 문장으로 상황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 표현 안에는 서로 다른 기전을 가진 여러 상태가 뒤섞여 있다. 발음 자체가 뭉개지는 마비말장애, 하고 싶은 말은 알지만 입술과 혀의 움직임을 계획하지 못하는 말실행증, 그리고 언어 처리 자체가 손상돼 단어가 안 떠오르거나 문장을 구성하지 못하는 실어증이다.

실어증은 언어기능에 이상이 없던 사람이 뇌질환으로 인해 말하기, 글쓰기, 말 이해하기 등의 기능을 잃는 상태다. 입이나 성대에는 문제가 없고 의식도 멀쩡한데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반대로 상대의 말은 이해하지만 자기 생각을 언어로 꺼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입이 안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 처리'의 문제라는 점이 핵심이다.

발병 속도가 가장 중요한 감별 기준이다

진료 현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증상이 언제부터 시작됐는가다. 정상적으로 생활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안 된다면 가장 먼저 뇌졸중을 의심해야 한다. 이 경우 치료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뇌경색은 증상이 생긴 순간부터 뇌세포가 빠르게 손상되기 때문에, 골든타임 내에 병원에 도착하는지가 예후를 크게 좌우한다.

반면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쳐 서서히 말이 어눌해지고 단어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우라면 접근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런 경과는 응급실이 아니라 신경과 외래에서 뇌 영상과 인지기능 검사를 통해 차분히 감별해야 하는 문제다. 알츠하이머병 초기에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것, 저것' 같은 대명사로 표현하거나 말문이 막히는 증상이 흔한데, 이 단계에서는 말 자체는 비교적 유창해 가족들이 언어장애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임상 메모. 언어 증상이 계단식으로, 즉 한동안 괜찮다가 갑자기 한 단계 나빠지는 양상을 반복한다면 작은 뇌경색이 누적되는 혈관성 치매 경과일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팔다리 마비나 시야 이상이 동반되는지 함께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기억력보다 언어가 먼저 무너지는 치매도 있다

치매라고 하면 기억력 저하를 먼저 떠올리지만, 언어 기능이 기억력보다 먼저 두드러지게 무너지는 아형도 실제로 존재한다. 전측두엽 퇴행은 어떤 증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느냐에 따라 전측두엽 치매, 진행성 비유창성 실어증, 의미 치매로 구분된다. 이런 경우 초기에는 '건망증'이나 '나이 탓'으로 오인돼 정신건강의학과나 이비인후과를 먼저 찾다가 진단이 늦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 때문에 서서히 진행되는 언어 변화를 발견했다면, 단순히 지켜보기보다는 신경과 진료를 통해 원인을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진단은 영상과 인지기능 검사로 이뤄진다

실어증을 유발할 수 있는 다양한 원인을 감별하기 위해서는 뇌 CT 혹은 MRI 검사가 필수적으로 시행된다. 이를 통해 뇌졸중이나 뇌종양 등 구조적 이상 유무를 먼저 확인한다. 여기에 더해 인지기능 검사를 통해 실어증의 양상과 동반된 인지 기능 상태를 함께 평가하는데, 이 과정에서 뇌졸중 후 실어증인지, 서서히 진행하는 퇴행성 언어장애인지가 구분된다.

  • 발음 자체가 뭉개지고 새는 경우 → 마비말장애 가능성

  • 단어를 알지만 소리로 만드는 과정이 어려운 경우 → 말실행증 가능성

  • 단어가 안 떠오르거나 문장 구성 자체가 안 되는 경우 → 실어증 가능성

  • 몇 시간~하루 사이 급격히 나타난 경우 → 뇌졸중 의심, 즉시 응급실

  • 몇 주~몇 달에 걸쳐 서서히 진행된 경우 → 신경과 외래 검사 필요

보호자가 기억해야 할 관찰 포인트

진료실에서 나는 보호자에게 늘 세 가지를 묻는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팔다리 힘도 함께 빠졌는지, 상대방의 말은 알아듣는지. 이 세 가지 정보만 정확히 전달해도 진료 방향을 잡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다만 증상 관찰만으로 가족이 스스로 병명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확진은 반드시 신경과 전문의의 진찰과 검사를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

급성기 이후, 언어는 다시 회복될 수 있다

뇌졸중으로 인한 실어증이든, 서서히 진행되는 치매의 언어장애든 급성기 치료 이후에는 꾸준한 언어재활과 인지훈련이 남은 기능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로뎀요양병원에서 이런 환자들을 만날 때마다, 말이 어눌해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이후의 관리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원인을 정확히 가려내고 그에 맞는 재활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언어 기능은 물론 가족과 나누는 일상의 대화도 다시 지켜낼 수 있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환자들을 마주하고 있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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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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