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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 환자의 종교와 영성 돌봄, 어떻게 함께할까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10월 10일
4분 분량

진료실에서 만난 ALS 환자 한 분이 손끝 하나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서도 매일 기도문을 마음속으로 외운다고 했다. 몸은 점점 굳어가는데 마음은 오히려 또렷해지는 것 같다는 말이 오래 남았다. 신체 기능이 사라져가는 병 앞에서 환자들이 붙잡으려는 것은 결국 삶의 의미와 관계,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 순간이었다.

상실의 질환, ALS가 묻는 실존적 질문

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는 대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원이 선택적으로 파괴되면서 사지 근력이 약해지고 호흡 기능까지 떨어지는 퇴행성 질환이다. 흔히 루게릭병이라 불리며, 수년에 걸쳐 신체 기능을 하나씩 잃어가는 '상실의 질환'이라는 표현이 쓰일 만큼 진행 양상이 뚜렷하다. 병이 깊어지면 호흡부전이 가장 흔한 사망 원인이 되고, 드물게는 신체 기능 대부분을 잃은 채 의식만 또렷한 완전잠김증후군 단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환자와 가족이 가장 먼저 매달리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체 기능이 아니다. 여러 연구에서 신체 기능이 떨어져도 삶의 질 자체는 유지되는 경향이 보고되는데, 이는 환자의 관심이 몸에서 벗어나 의미와 관계, 자기 가치 같은 영역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즉 ALS는 신체 질환이면서 동시에 삶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드는 질환이다.

기존 치료가 놓치는 영역

ALS 표준 관리는 근력 약화 방지, 영양 요법, 통증 관리, 호흡 재활, 언어 재활 등 대증적 요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신체 증상 관리에는 강점이 있지만 환자가 겪는 실존적, 영적 고통까지는 체계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 외래 진료에서 영적 요구가 일상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채플린(원목)의 역할도 명확히 정의돼 있지 않다.

  • 중증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해외 자료에서는 영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환자 비율 추정치가 49%에서 91%에 이른다는 지적이 있다.

  • 말이 어려워지고 완전잠김증후군에 가까워질수록 의사소통 자체가 끊기면서 영적 돌봄도 함께 단절될 위험이 커진다.

국내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내 영적 돌봄 체계가 암 환자 중심으로 발달해 있고, ALS를 포함한 신경계 퇴행성질환에 특화된 영적 돌봄 프로그램에 대한 자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앞으로 채워져야 할 공백으로 봐야 한다.

해외에서 쌓여가는 근거

ALS 환자 60명을 기저, 3개월, 6개월 시점에 추적한 연구에서는 종교성과 삶의 질 사이의 관계가 관찰됐고, 또 다른 연구에서는 ALS 환자 49명을 1년에 걸쳐 다섯 차례 방문하며 조사한 결과 초기에는 종교성과 삶의 질 사이에 유의한 관계가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적, 사적 종교성 모두 삶의 질과 유의한 관계로 발전했다.

돌봄제공자를 대상으로 한 문헌고찰에서는 영성이 전반적 삶의 질 만족도를 유의하게 예측했으나 심리적 고통을 유의하게 예측하지는 않았다. 질적 연구들에서는 영성이 돌봄제공자의 대처와 적응을 도왔고, 환자에게는 진단과 삶을 감사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는 보고가 있다. 다만 양적 연구들에서는 영성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이 일관되지 않고 혼재된 것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함께 확인됐다.

임상 메모. 미국의 한 완화의료팀은 외래 ALS 환자 10명을 대상으로 채플린이 4개월간 세 차례 방문하는 영적 평가 모델을 시도했다. 완료한 환자들에게서는 고립감, 자율성 상실, 우울, 취약함이라는 주제가 확인됐지만 그럼에도 여러 환자가 질병 가운데서도 감사함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채플린과 신경과의 협업, 어떤 틀로 접근하나

중증질환 돌봄에 특화된 훈련을 받은 채플린은 영적 평가를 수행하고 치료 계획에 기여하며 의사결정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때 영적 요구는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해 접근한다.

  • 의미와 방향성 - 지금의 삶과 병을 어떻게 해석하는가

  • 화해와 사랑 - 가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하고 싶은가

  • 자기 가치와 공동체 -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가

신경과와 완화의료팀이 먼저 '영적 영역도 우리가 다뤄야 할 증상'이라는 인식을 갖고, 이 세 축을 기준으로 환자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실제 임상에서 쓰이는 접근 방식이다. 여성 환자가 남성보다 내면적 영적 영역에서 더 충족감을 느끼는 경향이 관찰됐다는 보고도 있어, 성별이나 개인 성향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말이 어려워질 때, 영적 교류를 끊기지 않게 하려면

연수마비가 진행되거나 완전잠김증후군에 가까워지면 모든 보조 의사소통 기기가 환자에게 남은 극히 일부의 운동 조절 능력에 의존하게 된다. 이 시기를 대비해 미리 환자의 영적 선호와 중요하게 여기는 의례, 가치관을 기록해두는 것이 사전돌봄계획의 중요한 일부가 되어야 한다.

눈 응시판 같은 기본 도구부터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음성 인식 소프트웨어 같은 발전된 기술까지, 말이 어려운 환자가 의료 결정에 계속 참여하고 고립을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이런 도구를 최적의 방식으로 활용하려면 구조화된 치료와 조기 인지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임상적 의미와 균형 잡힌 이해

종교와 영성이 ALS 증상을 호전시키거나 생존 기간을 직접 늘린다는 식의 인과관계는 현재까지 확인된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쌓인 연구들은 대부분 삶의 질, 대처, 심리적 적응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관찰연구와 질적연구 수준이며, 양적 연구에서는 결과가 혼재되어 나타난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1968년부터 2005년까지 ALS 환자들이 남긴 자발적 서술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종교적 신념이 절망을 피하도록 지탱해주고, 개인적 영성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확인됐다. 희망과 질병 적응, 죽음에 대한 두려움 완화와의 연관성도 여러 연구에서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영성을 특정 종교 활동으로 좁게 보지 않는 것이다. 종교가 없는 환자나 가족에게도 삶의 의미, 관계, 자기 가치를 묻는 대화는 똑같이 필요하다. 진단 초기부터 이런 요구를 선별하고 필요한 경우 전문 인력에게 연계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신경과 진료의 또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함께 걸어가는 돌봄을 향해

ALS는 몸을 하나씩 내려놓게 만드는 병이지만, 그 과정에서 환자가 붙잡으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누구였고 누구와 연결되어 있었는지에 대한 감각이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신체 증상 관리와 함께 환자와 가족이 이 질문들을 외면하지 않고 천천히 마주할 수 있도록, 작은 대화 하나하나에도 귀 기울이려 한다. 말이 점점 어려워지는 시기가 오더라도 환자의 마음이 혼자 남겨지지 않도록 함께 길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키고 싶은 돌봄의 모습이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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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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