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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S 진단 후 유언장, 왜 지금 써야 할까

작성자 사진: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유재국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신경과 전문의)
9월 8일
3분 분량

진료실에서 유언장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환자는 많지 않다. 대부분은 치료 계획과 재활 이야기가 끝난 뒤, 조심스럽게 "이런 것도 지금 준비해야 하나요"라고 묻는다. 나는 그럴 때마다 같은 대답을 한다. 지금이 가장 안전한 시점이라고.

손과 목소리가 아직 남아 있을 때

루게릭병(ALS)은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세포가 서서히 퇴행하면서 근육이 위축되고 마비되는 질환이다. 초기에는 손이나 발의 근육 약화, 경련, 말이나 삼킴의 어려움으로 시작되지만, 병이 진행되면 전신 근육이 점차 마비된다. 반면 감각 기능과 인지 기능은 대부분 유지되는 편이라, 몸은 굳어가도 생각은 온전한 상태로 오래 남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지점이 유언과 재산 정리 문제와 맞닿아 있다. 생각은 또렷한데 손으로 글을 쓸 수 없거나 발음이 어려워지는 시기가 오면, 법이 인정하는 유언 방식 자체를 실행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진료의 초점, 그리고 놓치기 쉬운 부분

진단 이후 진료의 중심은 병의 진행 상태와 예후 평가, 단계에 맞는 약물치료와 재활치료에 맞춰진다. 이는 당연하고 중요한 일이지만, 그 사이 법적·재산적 정리는 뒷전으로 밀리기 쉽다. 게다가 초기 증상이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어 정식 진단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어, 진단이 확정될 즈음이면 이미 근력 저하가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법률 실무에서도 마찬가지다. 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 같은 일반적 유언 방식이 신체 기능 저하 이후에는 실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 환자와 가족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 민법이 정한 유언의 다섯 가지 방식

민법 제1065조는 유언 방식을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다섯 가지로 한정한다. 어느 방식을 택하든 그 방식이 요구하는 요건을 하나라도 빠뜨리면 유언 전체가 무효가 될 수 있다.

  • 자필증서: 유언 내용 전부를 유언자가 직접 손으로 써야 한다. 일부라도 대필이 들어가면 전체가 무효 처리된다.

  • 공정증서: 증인 2인이 참여한 공증인 앞에서 유언의 취지를 말로 전하고(구수), 공증인이 이를 받아 적어 낭독한 뒤 유언자와 증인이 서명·날인하는 방식이다.

  • 구수증서: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다른 방식이 불가능할 때만 허용되는 예외적 방식으로, 요건 심사가 엄격해 무효가 되는 사례도 있다.

이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듯, 손으로 쓰는 방식이든 말로 구술하는 방식이든 모두 신체 기능을 전제로 한다. 근력과 발음이 유지되는 시점을 지나면 선택할 수 있는 방식 자체가 좁아지는 셈이다.

의사능력, 왜 초기에 정리해야 하나

유언을 하려면 만 17세 이상이면서 유언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의사능력이 있어야 한다. 루게릭병 환자의 약 50% 정도에서 경미한 인지장애가 동반되기도 하고, 드물게 전두측두엽 치매가 발생해 성격변화나 언어장애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흔한 경과는 아니지만, 이런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단 초기, 인지기능이 명확할 때 유언 절차를 마쳐두는 것이 왜 안전한지를 뒷받침한다.

임상 메모. 유언은 대리가 허용되지 않는 본인 고유의 행위다. 가족이 아무리 뜻을 잘 알아도 대신 작성해줄 수 없다는 점이, 시기를 미루지 말아야 할 이유 중 하나다.

분쟁을 줄이려면, 공정증서가 갖는 의미

재산 분쟁이 우려되거나 상속인 간 다툼 가능성이 있는 경우, 공정증서 유언이 사후 분쟁을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법률 실무의 오랜 경험이다. 공증인이 직접 의사능력과 구수 과정을 확인하고 기록하기 때문에, 나중에 유언의 진위나 능력을 두고 다투는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다만 결격 증인이 참여했거나 구수 요건이 미비해 무효가 되는 사례도 있으므로, 절차 전반을 상속 사건을 다뤄본 변호사나 공증인과 함께 밟는 것이 안전하다.

자필증서·녹음·비밀증서 유언은 유언자 사망 후 가정법원의 검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검인은 유언의 형식과 상태를 확인·보존하는 절차일 뿐 그 자체로 유효 여부를 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알아두면 좋다.

임상적으로 보는 시기의 문제

평균 생존 기간이 진단 후 3~5년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치이고 개인차가 크다. 발병 시 나이, 진단까지 걸린 기간, 호흡 보조 장치 사용 시점 등에 따라 진행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특정 환자의 예후를 미리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반대로 말하면 지금 당장은 괜찮아 보여도 언제 근력이나 발음이 급격히 저하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손으로 쓰든 말로 구술하든, 그 기능이 남아 있는 지금이 절차를 마무리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시점이라는 결론은 여기서 나온다.

준비는 두려움이 아니라 안정을 위한 것

유언장을 쓰는 일이 병을 포기하거나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는 아니다. 치료와 재활은 계속 진행하면서, 별개로 법적 안정성을 확보해두는 절차일 뿐이다. 오히려 재산과 절차가 미리 정리되어 있으면,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도 남은 시간을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로뎀요양병원에서는 진단 초기 환자와 가족이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편안하게 꺼낼 수 있도록, 의료진이 진행 단계별 신체 변화를 미리 설명하고 필요한 시점을 놓치지 않도록 안내하는 데 마음을 쓰고 있다. 병의 진행을 늦추는 노력과 함께, 지금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나씩 마쳐가는 과정이 결국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더 단단한 안정을 만들어준다고 믿는다.

※ 본 콘텐츠는 의학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개별 진단·치료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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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요양병원 안내

이 글은 인천 미추홀구 로뎀요양병원 병원장 유재국(신경과 전문의)이 작성했습니다. 루게릭병(ALS), 파킨슨병, 뇌졸중 등 뇌신경계 질환과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재활을 함께 관리합니다. 진료 안내는 로뎀요양병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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